일본은 한국에 비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수적인 부분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사회적 지위 측면도 서구 선진국에 비해선 많이 뒤쳐진 상황입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연례보고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서 일본의 성평등 순위는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4위를 차지해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했습니다. 아직 “여성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가정을 잘 꾸려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가 강하게 남아있는 영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본의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미국의 한 기관이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적어도 일본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는 모습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의 기업 주주총회 의결권 자문업체인 미국 글래스루이스가 2019년부터 일본의 주요 상장기업에게 여성 임원 기용을 촉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여성 이사와 감사가 없는 기업의 주총에서 회장 또는 사장의 선임·연임 의안에 반대를 권고키로 한 것입니다. 세계 2위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가 해외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던 만큼 여성 인재의 고위직 등용에 소극적이었던 일본기업 문화에 변화를 촉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글래스루이스는 연내에 여성 임원 임용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의결권 행사 신 기준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우선 시가총액 순위 100대 상장사에 대해 2019년 2월 이후 열리는 주총부터 적용키로 했습니다. 이후 전체 상장사로 확장한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일본 100대 주요 기업 중 여성이사 및 감사가 없는 기업은 신에츠화학공업, 도레이, 후지필름홀딩스 등 29 개사에 달합니다. 주요 상장사 30%가 여성임원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최근 각종 품질 부정 문제로 주요 일본 기업 대표들이 언론에 등장해 사죄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기업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중장년 남성으로만 구성된 임원진들이 함께 고개 숙이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일본 기업의 현실을 고려해 여성 후보자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을 부여하기 위해 글래스루이스는 새로운 방침 적용 1년 반 전에 새로운 입장을 공표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 주식시장에서 활동하는 해외 운용사들 사이에선 유사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계 대형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는 여성 임원이 없는 일본 투자기업에 대해 내년도 주총에서 이사 선임에 반대할 방침입니다.

그동안 일본 기업은 일본 출신 중년 남성 일색으로 이사회를 구성했습니다.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인재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일본의 획일적 기업 풍경에 변화가 올지 관심 있게 지켜볼 시점인 듯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