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통상 분야에서 강경 조치를 쏟아내며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내에서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중국과의 경제 분야 대화채널인 ‘포괄적경제대화(CED)’도 당분간 열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중국과 경제대화 당분간 안해"… 통상압박 강도 높이는 트럼프
◆“시장경제국과 반대 방향으로 가”

1일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지난주 WTO에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MES)를 부여할 수 없다’는 요지의 법률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 아래 중국은 시장경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WTO 규정에 따르면 ‘비(非)시장경제국’은 덤핑 또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사를 받을 때 경제 상황이 비슷한 제3국의 가격을 기준으로 덤핑률을 산정하게 된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할 때 15년간 비시장경제국 지위를 감수하겠다고 합의해 그동안 고율의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받아 왔다는 게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중국은 WTO 가입 15년째인 지난해 말 시장경제국 지위 획득을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펼쳤지만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거부했다. 중국은 WTO에 제소하면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미국은 이번에 재차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비시장경제국가라는 개념은 WTO 규칙에 존재하지 않는 냉전 시기 산물”이라며 미국을 비판했다.

◆中 “혼자 철강 생산량 감축 못 한다”

미국은 중국 자본의 자국 기업 인수합병(M&A)에도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사위원회(CFIUS)는 지난달 30일 중국 투자기업 오션와이드홀딩스의 미국 보험사 젠워스파이낸셜 인수 건 승인을 거부했다. M&A가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내년 4월까지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CFIUS는 지난 9월에도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계 사모펀드 캐넌브리지캐피털의 미국 반도체 기업 래티스반도체 인수를 무산시켰다.

지난달 28일에는 미 상무부가 중국산 알루미늄 합판의 덤핑 여부를 직권조사한다고 발표했다.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부과와 관련해 기업의 청원 없이 직권조사에 나선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공세를 강화하자 중국도 발끈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장관급 글로벌 철강포럼에서 리청강 중국 상무부 차관보는 중국이 단독으로 철강 생산을 감축하는 것에 반대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이 “미국은 철강 과잉 생산의 원인과 결과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하자 리 차관보는 “중국은 이미 상당한 노력을 해 왔다”고 맞섰다.

◆美 “국제 규범에 좀 더 부합해야”

데이비드 맬퍼스 미 재무부 차관보는 지난달 30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먼저 국제 규범과 시장 자유화에 더 부합하도록 경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며 “당분간 포괄적경제대화를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포괄적경제대화 개최를 거부한다는 것은 통상 분야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 대화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중 양국이 진행한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트럼프 정부 들어 경제·통상 분야만 분리해서 만든 것이다. 양국은 지난 7월 첫 대화를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공 모드와 관련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미국 산업계에서 보다 큰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 의견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제재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 같은 통상압박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빌 클린턴 정부 때 국방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28일 “중국이 수주 안에 강력한 대북제재를 하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의 통상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오춘호 선임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