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중국이 ‘쌍중단(雙中斷)’ 주장을 접고, 북핵 해결을 위해 북한에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국의 ‘최고의 압박과 제재’라는 대북 전략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16일 중국 외교부는 쌍중단이 가장 합리적인 북핵 해결책이라고 밝혀 혼선을 빚고 있다.

◆트럼프, “모든 옵션 테이블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아시아 순방 결과를 보고하는 연설을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핵을 보유한 북한은 중국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과거에 지속적으로 실패한 것들과 같은 이른바 쌍중단(freeze for freeze) 합의는 미국이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12일간 아시아를 순방하고 돌아온 직후 시 주석과 합의한 내용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쌍중단은 미국과 북한의 대결 국면이 고조되는 것을 막고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구상이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해 추진하자는 ‘쌍궤병행(雙軌竝行)’과 함께 중국이 내세워온 한반도 정책의 핵심 요소다. 러시아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중국은 남북한은 물론 미국 일본에도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수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쌍중단 불수용 합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대북 접근에 모종의 변화가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시 주석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를 충실히 이행할 것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 정권에 그의 거대한 경제적 지렛대를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쌍중단이 합리적 해결책”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쌍중단 관련 발언에 대해 “중국의 북핵 관련 입장은 명확하고 일관되며 모두 알고 있다”며 “중국은 쌍중단이 가장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이라고 보며 다른 나라들이 방안을 내놓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 주석이 쌍중단 불수용에 동의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최근 두 달 동안 도발을 자제했고, 중국이 대북 특사를 보내기로 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대북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큰 움직임”이라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국은 한국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고, 17일엔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특사로 북한에 파견한다.

베이징 소식통은 “쑹타오 부장이 미·중 정상회담 이후 방북하는 것은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합의 내용을 전달하고, 의향을 타진하고, 중재하려는 의미가 있다”며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쑹타오의 방북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북 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중국의 북핵 문제 중재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초미의 관심사인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주 아시아 순방 기간에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무역 등에 대한 ‘중대 성명’을 예고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백악관도 “대통령이 순방 말미에 이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이처럼 군불을 때다 정작 발표하지 않은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묘한 정세 변화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4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몇 달 전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고 했을 때는 군사옵션에 무게가 실렸다면 지금은 대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