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최장수 총리' 꿈꾸던 아베의 추락…10년 전 악몽 되살아나나
“각료를 임명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총리인 나의 몫이다. 국민 여러분의 엄격한 비판을 저 자신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8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이어갔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표현도 수차례 되풀이했다. ‘가케학원 스캔들’ 등 사학법인의 이권에 총리 자신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탓에 주요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잇따라 참패한 데 이어 이날은 ‘여자 아베’로 불리던 측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마저 자위대 문서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사퇴하는 등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현실화하는 도미노식 붕괴

최근 아베 정부는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잇따라 위기를 맞으며 지리멸렬한 상태다. 내각 지지율 하락→선거 참패→주요 각료들의 연이은 구설과 사퇴가 꼬리를 물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이 당연시되던 아베 총리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2~23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26%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2012년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래 최저치다. 3개월 전 60%가 넘던 고공 지지율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곤두박질쳤다.

역대 일본 정권은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뒤 권력을 내줬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총리(25%), 2009년 아소 다로 총리(20%),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20%)도 여론조사에서 20%대 지지율을 찍은 뒤 권좌에서 내려왔다.

지지율이 ‘추상적’ 지표라면, 현실적 기준인 선거 결과에서도 아베 정부는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 2일 치러진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 등 야권이 절반(64석)을 훌쩍 넘는 79석을 얻었다. 반면 자민당 의석은 57석에서 23석으로 반 토막 났다. 지난 23일 치러진 센다이 시장 선거에서도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

아베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관료들의 망언과 낙마, 배신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석 달간의 일이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장관)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은 도쿄가 아니라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해 다행”이라고 망언을 하더니 사임했다. 무타이 준스케 부흥정무관(차관급)과 나카가와 도시나오 경제산업정무관은 실언과 불륜 문제가 불거지면서 물러났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남수단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중인 자위대의 일지 은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결정타였다. 지난 29일에는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마저 “(각종 의혹을) 은폐하는 체질에 공사(公私)를 혼동하는 허술함이 겹친 탓에 이 지경이 됐다”고 아베 총리에게 ‘칼’을 꽂았다.

장기집권 피로·오만 겹친 탓

이런 위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가케학원 스캔들’로 불리는 일련의 사학 스캔들이다. 아베 총리 부부와 관련이 깊은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국유지를 헐값에 분양받았다거나, 아베 총리 친구가 운영하는 가케학원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내주도록 문부과학성 관료들이 관련 담당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부정부패 의혹에 일본 국민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학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윗사람의 구체적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기는’ 것을 의미하는 ‘손타쿠(忖度)’라는 용어가 일본 사회에 널리 회자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역대 최장기 집권을 꿈꾸던 아베 정부에 대한 피로감도 급격한 지지기반 상실을 초래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17일 기준으로 1·2차를 합쳐 ‘집권 2000일’을 넘겼다.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3위 기록이다. 올초에는 아베 총리가 최장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도록 자민당 총재 임기 제한을 ‘3년 임기 2회 연임’에서 ‘3회 연임’으로 늘리기도 했다.

‘10년 와신상담’ 물거품 되나

외조부(기시 노부스케)가 총리, 조부(아베 히로시)가 중의원 의원, 아버지(아베 신타로)가 외상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베 총리는 이번이 두 번째 집권이다.

부친과 외조부의 후광에 힘입어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 등을 표방하며 2006년 9월 호기롭게 출발한 1차 집권은 경험 부족 탓에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짧은 집권 기간에 5명의 각료가 정치자금 문제와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며 옷을 벗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일본 정치에) 마이너스다. 빨리 나를 대신할 자민당 총재를 결정해달라”는 사퇴의 변을 남긴 아베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실각 후 2012년 깜짝 재집권 때까지 아베는 외부에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총리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쿨 어스 50간담회’를 결성하고 ‘정책연구회’에 참여하는 등 1차 집권기의 실패 원인을 복기하고 대안을 마련했다. 세코 히로시게 현 경제산업상 등과 꾸준히 교류하며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구상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정책 준비로 아베가 전후 최장기 총리를 노릴 수 있게 됐다는 게 일본 언론의 평가였다.

재집권 이후 탄탄대로를 거듭하며 얻은 지나친 자신감은 독이 됐다. 자신이 유치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고, 자위대의 대외 군사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까지 이루겠다고 밀어붙이던 시점에 각종 경고음이 나오며 ‘콘크리트’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국민의 65%는 아베 정부가 오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이종원 와세다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일본 정당은 지역적·계층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며 “고이케 도쿄도지사 등 아베의 대안이 부각되면서 정권의 구심력이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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