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 이번엔 네슬레 공격…"사업구조 다시 짜라"
미국 월가의 대표적 행동주의 투자자 대니얼 롭이 세계 최대 식품회사인 스위스 네슬레를 새 타깃으로 잡았다. 지분 매입 금액이 35억달러로 지금까지 롭이 시도한 공격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네슬레, 과거에 안주하다 뒤처져”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를 이끌고 있는 롭은 25일(현지시간) 네슬레 지분 매입 사실과 함께 네슬레의 경영 개선 요구조건을 공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26일 보도했다. 행동주의 투자는 경영상 비효율이 크거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 모은 뒤 사업전략 변화나 구조조정을 유도해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려 수익을 챙기는 투자 기법이다.

서드포인트는 “네슬레가 생활소비재 분야에서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갖췄다고 주장하지만 주주 수익률은 미국과 유럽의 다른 기업보다 크게 저조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올해 전망치가 15.6%로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하인즈(29.6%)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허쉬(20.6%), 켈로그(16.5%) 등에 비해서도 낮다.

서드포인트는 주가 상승과 배당수익을 더한 총주주이익률(TSR)도 다른 소비재 기업에 크게 못 미친다고 했다. 네슬레의 최근 3년간 TSR은 28%로 유니레버(69%), 렉키트(65%), 로레알(55%), 다농(34%)을 밑돌았다. 롭은 “경쟁사들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반면 네슬레는 10년간 과거 방식에 안주하면서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롭은 경영 비효율 개선책으로 네슬레가 보유 중인 프랑스 화장품회사 로레알 지분 23.2%(270억달러어치) 전부를 매각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이익률이 낮은 브랜드를 솎아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생산성 향상과 함께 인수합병(M&A)으로 새로운 성장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네슬레 영업이익률을 2020년까지 18~20%로 높이라고 요구했다. 롭은 “경영진이 긴장감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도록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며 마크 슈나이더 네슬레 최고경영자(CEO)를 압박했다.

◆식품회사로 옮겨붙은 공격

블룸버그통신은 올초 크래프트하인즈가 유니레버 인수에 실패하면서 식품업계가 비용 절감 요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이 소유한 크래프트하인즈는 유니레버를 인수하기 위해 1430억달러를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유니레버는 이후 주주들로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허쉬 등 초콜릿 회사들도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미국 내 판매가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슬레는 최근 4년 연속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올해 1월 취임한 슈나이더 CEO는 커피와 애완동물 사료 등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을 강화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나섰지만 결국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 목표가 됐다.

롭이 이끄는 서드포인트는 과거 야후를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전략 변경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주의 투자 전략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유럽 기업을 상대로 한 공격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드포인트의 투자 규모는 이례적으로 크다고 WSJ는 지적했다.

행동주의 투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린다. 소수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제압하려면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드포인트는 35억달러를 투자해 네슬레 주식 4000만주를 매입, 6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지만 지분율은 1.25%에 불과하다. 1대 주주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비롯해 노르웨이 중앙은행,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 등이 공격에 동조해야 한다. 네슬레는 롭의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