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가동을 재개한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다카하마 원전 4호기.
지난달 17일 가동을 재개한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다카하마 원전 4호기.
일본만큼 원자력 발전으로 크게 덴 나라도 없다. 2011년 도호쿠(東北) 대지진 충격으로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최악이라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142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대표 기업 도시바가 미국 원전건설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경영 악화로 존폐 기로에 섰다.

이 같은 원전과 잇따른 ‘악연’에도 일본은 원전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원전의 안전성 심사 기준 강화를 전제로 오히려 원전 가동을 늘려나가는 모습이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때 ‘원전 제로(0)’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부작용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스위치 올리는 일본 원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정례회의를 열고 간사이전력의 오이 원전 3·4호기가 안전대책을 대거 강화한 ‘신(新)규제 기준’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중지한 두 원전을 재가동한 것이다. 앞서 규슈전력의 겐카이 원전도 재가동 방침을 발표했다.

오이 원전 인근 다카하마 원전 1~4호기도 재가동 심사를 통과해 지난달 4호기가 완전 가동에 들어갔다. 3호기는 이달 6일 재가동에 들어가고 1·2호기도 재가동을 준비 중이다. 간사이전력은 재가동 원전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전기요금 인하를 정부에 신고한다는 방침이다.
"원전제로 정책, 대가 너무 크다"…원전 스위치 다시 켜는 일본
다카하마 원전은 지난 3월 오사카 고등법원이 항소심에서 오쓰 지방법원의 가동 중지 판결을 뒤집었기에 가능했다. 같은 달 히로시마 지방법원도 시코쿠전력의 이카타 원전 3호기 재가동이 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환경단체 등의 압력으로 주춤했던 원전 재가동 문제를 두고 일본 법원이 속속 원전 부활 쪽으로 손을 들어줬다.

일본의 원전 부활은 대세다. 2014년 9월 규슈전력의 센다이 원전 1·2호기를 시작으로 미하마 원전 3호기, 이카타 원전 3호기, 겐카이 원전 3·4호기 등이 안전심사를 통과했다. 재가동 합격 판정을 받은 원전 수가 총 12기로 늘었다. 이 중 이카타 원전(1기)과 센다이 원전(2기), 다카하마 원전(1기) 등 4기는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 지금까진 재가동 원전이 대부분 지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간사이 지역에 편중됐지만 일본 동부와 북부지역 원전들도 재가동 목록에 추가될 전망이다.

◆180도 바뀐 원전정책

일본 주요 발전사업자들은 원전 재가동을 계기로 수익성 개선을 도모하고 나섰다. 도쿄전력은 지난달 발표한 재건계획에서 현재 가동이 중단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재가동을 전제로 한 경영 전망을 마련했다. 주력 원자력발전소 재가동과 송배전 시설의 통합과 재편성을 통해 올해부터 10년간 연평균 1600억~2150억엔의 경상이익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원전들이 속속 재가동되면서 잠정 중단됐던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에너지청은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응하는 데 원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원전 관련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원자력 과학기술인재 육성추진사업’ 신규 과제를 공모하고 있다. 원전 관련 기관 간·분야 간 벽을 넘어 기초연구를 하고 인재 육성을 추진한다는 취지에서다. 구체적으론 △전략적 원자력 연구 △방사선 영향 연구 △원자력과 사회의 관계 관련 인문학·사회과학 연구 등을 대상으로 한다. 진보언론 아사히신문도 “원전 재가동을 하려면 인근 지방자치단체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정도로 기존의 강경 반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2011년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도호쿠 대지진 발생 직후 전국의 원전을 전면 가동 중단시켰다. 2030년까지 ‘원전 가동 제로(0)’ 정책을 추진했다.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그런 정책을 180도 돌려세웠다. 2030년까지 에너지의 20~22%가량을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마땅찮은 LNG 대안

아베 정부는 발전연료로 석유를 사용하는 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LNG 발전으로는 에너지 공급에 힘이 부친다고 판단했다.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 LNG 수입을 늘렸지만 당시 높은 유가에 연동됐던 LNG를 대량 구매하면서 가격 부담이 적지 않았다. LNG 수입은 일본이 2011년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로 돌아서 5년 연속 적자 수렁에 빠지게 한 ‘원흉’으로 꼽혔다.

석유화력발전은 발전단가 경쟁력이 더욱 떨어진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IEEJ)는 “발전단가가 원전이나 기타 화력발전에 비해 비싼 석유화력발전은 폐기나 가동 정지가 잇따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원전에서 손을 떼면서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2010년 19%에서 2015년 6%까지 떨어졌다. 대지진 전과 비교해 전기요금은 가정용이 20%, 산업용은 30% 급등했다. 국민 1인당 부담은 연 1만엔가량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원전산업을 일거에 포기하기엔 관련 연관산업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도 한몫했다. 원전 가동을 전면 중지하면 원전 정기검사 및 유지·보수분야 등에 종사하는 기업의 기술과 관련 인력이 순식간에 사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력회사, 건설회사 등 일본의 원전 관련 종사 인력은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원전 점검 및 유지·보수 공사 관련 인원은 3만3000여 명에 이른다. 유지·보수 기업은 통상 13개월 주기로 영업하며 수주량 및 수익 전망을 세울 수 있었지만 도호쿠 대지진 이후 매출이 평균 50%가량 감소했다.

대지진 전에 비해 매출이 4분의 1 토막 난 회사도 있었다. 원전 지역에 뿌리내린 중소기업이 많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이들을 고사시킬 수 없다는 판단 역시 작용했다. 원전을 포기하기엔 사회·경제적 ‘출혈’이 너무 크다고 일본 정부와 사회가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