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후변화는 사기"…파리기후협정 탈퇴는 예고된 수순
'도미노 탈퇴·개도국 지원 차질' 우려…지구촌 반대속 美선 찬반양론


전 세계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려고 합의한 '파리 기후협정'에서 미국이 조만간 탈퇴를 공식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부터 기후협정을 공공연히 비판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협정 이탈은 예고된 사안이긴 하다.

문제는 세계 경제 최강국인 미국이 기후협정에서 빠지면 다른 국가의 추가 이탈로 '반(反) 온난화' 전선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이 미국의 협정 탈퇴에 반대하는 가운데 미국 내에선 협정 이탈을 두고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 트럼프 "파리협정 결정 곧 발표"…탈퇴는 예고된 수순?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오후 3시(미국 동부시간·한국시간 2일 새벽 4시)에 파리 기후협정에 관한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방향을 밝히지 않았지만 미 언론은 파리협정 탈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기후협정에서 이탈한다고 해도 깜짝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이탈의 전조가 그간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사기"라고까지 하며 기후협정을 맹비난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파리협정의 이행 조치인 탄소세 도입을 하지 않기로 결론 내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기후협정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일자리 창출을 방해한다고 트럼프는 여긴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메시지도 약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 조짐은 지난달 27일 이탈리아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있었다.

G7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견 탓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문구를 폐막 성명에 담는 데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이 없다면 미국 없는 기후협정은 눈앞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것인지 아니면 협정의 근간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빠져나올 것인지를 관심 있게 봐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자의 경우 탈퇴까지 3년 정도가 걸리며 후자를 택하면 시간이 더 적게 걸리지만 더 극단적인 선택이 될 전망이다.

◇ 미국 없는 기후협정…실효성 의문·도미도 탈퇴 우려
파리 기후협정은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모인 195개 협약 당사국이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며 합의한 결과물이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1997년 교토 의정서와는 달리 파리협정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책임을 분담하기로 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교토 의정서와 파리협정의 출발점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이었다.

당시 당사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지만, 리우 협약은 구속력이나 강제성은 없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마련된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의 적극적인 주도로 파리협정이 나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협정 이행 약속을 저버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탈퇴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가장 큰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사항은 미국을 시작으로 다른 국가의 '도미노 탈퇴' 우려라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함께하지 않겠다고 나서면 협정 참여 여부를 재고할 국가들이 더 나올 수 있다.

일단 중국과 유럽연합(EU), 인도 등은 주요 탄소 배출국들은 협정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의 불참 속에 다른 국가들이 탄소 배출 절감 노력을 소홀히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큰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자금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미국은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개도국을 지원하는 녹색 기후펀드에 30억 달러(약 3조3천억 원)를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걷어찰 공산이 크다.

NYT는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2030년 세계 탄소 배출량이 69기가톤(Gt)에 달해, 파리협약이 당초 목표로 했던 56기가톤보다 23%나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선진국에 연 1천억 달러의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개발도상국의 배출 절감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 지구촌, 美탈퇴 반대…미국서는 찬반양론
지구촌은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미국의 탈퇴를 강력히 반대하며 똘똘 뭉치고 있다.

EU와 중국은 미국의 탈퇴로 불거질 리더십 공백을 메꾸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도 온난화 대응에 흔들림 없는 자세를 약속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정상들이 미국을 빼고라도 협정을 이행하겠다는 단결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에선 기후협정 탈퇴를 놓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오바마 유산을 이어받는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전부터 기후협정 탈퇴가 미국의 가치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비난에 나섰다.

민주당의 마이클 베넷(콜로라도)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기후협정의 이탈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뒤에 놓기' 정책의 다른 예"라며 "혁신과 과학, 국제사회의 리더십" 면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 등 IT업계 수장들도 대체로 협정 탈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반면 기후협정 탈퇴를 '오바마 유산 지우기'로 여기는 공화당에서나 미 석탄업계 등은 협정 탈퇴를 반긴다.

트럼프 정권 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협정 유지 쪽에 섰지만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콧 프루잇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협정 탈퇴를 주장한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