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공동화 막아라"…도쿄 하네다공항 빈 활주로에 항공·로봇단지
한국의 인천 격인 일본 요코하마시 니시구에 있는 인공 매립지 ‘미나토미라이 21지구’. 화장품 제조업체 시세이도의 연구개발(R&D)시설 건설 공사로 소음이 요란하다. 니시구에는 지난해 게이큐전철 본사가 들어섰고, 몇 년 전엔 닛산글로벌 본사가 자리잡았다. 그런가 하면 도쿄 인근 지바현에 나리타공항이 건설된 이후 ‘일본의 관문’으로서 위상이 추락한 도쿄 하네다공항 폐활주로 부지에는 항공·로봇산업과 관련한 첨단기업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때 도시 외곽으로, 지방으로, 해외로 밀려나기 바빴던 일본 제조업 관련 시설들이 도쿄를 비롯한 일본 수도권 한복판에 다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10여 년 전 수도권 내 공장 진입 규제를 철폐한 결과다.

◆민·관 힘 합쳐 수도권 공장 유치

2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하네다공항에서 사용하지 않는 활주로 등 유휴지 11㏊(약 3만3000평)가 2020년까지 항공·로봇산업 관련 첨단기업 집적지로 재탄생한다. 이 지역 재개발을 담당하는 도쿄 오타구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고 앞서 나갈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지난 24일 토지정비 공사를 시작했다.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관련시설 공사를 마치는 것이 목표다.

하네다공항의 미활용 시설 재개발 사업은 일본 국토교통성과 지방정부인 도쿄 오타구, 민간 기업인 스미토모부동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약 54㏊ 부지를 3구역으로 나눠 첨단산업시설, 대규모 공항호텔, 문화관광 산업시설, 비행기 격납고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한국 김포공항에 해당하는 지역에 산업 관련 시설 유치에 적극 나선 것은 1960~1970년대 시작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부작용 때문이다. 당초 정책 의도대로 효과를 보기는커녕 수도권 산업 공동화 부작용으로 이어진 ‘아픈 기억’이 있다.

◆균형발전 부작용에 규제 철폐

일본은 2002년 ‘(수도권)공업 등 제한법’을 폐지했고, 2006년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삼은 ‘공장재배치촉진법’마저 없앴다. 수도권 규제로 지방으로 공장이 옮겨가는 게 아니라 해외로 알짜 기업의 생산시설 이전만 부추겼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규제의 주된 타깃이던 도쿄도와 사이타마현, 가나가와현 등에서 공장 감소가 두드러졌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초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장기 불황이 닥치자 수도권 여부를 가리지 않고 좋은 기업을 유치해야만 일자리도 늘고, 경제도 발전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수도권 진입 규제법에도 불구하고 ‘도쿄 집중 현상’이 심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점도 수도권 공장 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수도권을 규제한다며 지방에는 획일적인 산업단지만을 육성했고,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중앙정부의 재정적자가 한때 642조엔(약 6467조원)에 이르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사카시가 자본금 3000만엔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1994~2014년 본사를 오사카에서 외지로 옮긴 508개사를 조사한 결과 도쿄로 본사를 옮긴 기업이 198개(39%)나 됐다. 거래처와 고객이 여전히 도쿄에 많아서였다.

◆“50년 전 정책 과오 되풀이 안 해”

일본 정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50년 전의 정책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 아래 체계적으로 수도권에 기업을 유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진행해온 기업특구 정책이다. 수도권 개발 규제를 잇따라 완화해 수도권 재개발과 공장 유치를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일본 주요 지방자치단체도 경쟁적으로 경제특구 정책에 호응해 활동하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 오키나와 등 17개 지자체가 전략특구로 지정돼 있다. 이번 하네다공항에 첨단공장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기업특구 정책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역사 주변 개발이나 공항, 항구 등의 시설 정비 등 도쿄도 내 28개 재개발 계획을 완성하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10조엔(약 100조8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설 등 투자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 증가와 거주자 확대에 따른 상업 거래 증가 효과가 그만큼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