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이 달러 강세에 대한 베팅을 접고 있다. 대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목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늘리고 있다.

16일(현지시간) BoA(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5월 설문조사(FMS)를 보면 월가 펀드매니저의 26%는 ‘가장 인기있는 거래’로 나스닥 투자(Long Nasdaq)를 꼽아 1위에 올랐다. 최근 5개월 연속 1위였던 ‘달러 매수(dollar long)’는 3위(12%)로 밀렸다. 2위는 유럽증시 투자(15%)가 차지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테크기업에 투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눈부신 실적 때문이다. IT 기업들의 강력한 실적에 힘입어 나스닥 지수의 상승률은 올들어 14.6%(16일 종가기준)를 기록, 다우지수(6.1%)를 배 이상 앞서고 있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을 비롯,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과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상위 5개 기업이 나스닥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올해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 북, 넷플릭스의 주가는 모두 약 30%가 올랐다. 알파벳도 21%가 상승했다.

사상 최고수준을 기록중인 미국 증시가 과열됐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지만 위험자산 선호현상 역시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펀드매니저중 절반 가까운 47%는 지수 조정에 대비한 헤지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역으로 53%만이 향후 3개월래 급격한 증시하락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전달 68%에서 15%포인트나 급락했다. 2014년 1월 이후 최저치다.

반면 나스닥에 대한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매달 나오는 이 설문조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이 가장 눈여겨 보는 항목은 ‘가장 인기있는 거래(표 참조)’다. 가장 많은 투자금이 몰려들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거품이 끼여있어 발을 뺄 때가 다가온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최근에는 유럽증시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한 달간 월가 펀드매니저들의 유로존 주식에 대한 투자비중은 2015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증시가 과열됐다고 보는 비율도 37%로 2000년 1월이후 최고수준까지 올랐다.

BoA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투자전략가는 그러나 “투자 심리는 여전히 낙관적”이라며 “글로벌 증시 호황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비이성적이라는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중 34%는 향후 글로벌 매크로(거시)전망과 관련, 저물가·고성장을 뜻하는 골디락스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펀드매니저가 꼽은 가장 큰 테일리스크는 ‘중국의 신용긴축(credit tightening)’으로 31%의 응답률을 보였다. 중국 금융당국이 과도한 신용을 우려해 위험대출을 줄이는 노력을 강화하면서 단기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다. 이어 ‘글로벌 채권시장 붕괴’와 ‘무역전쟁’이 각각 19%와 16%로 2, 3위에 올랐다. 이번 달 설문에 응한 월가의 펀드매니저는 모두 213명으로 이들의 운용자산은 6500억 달러에 달한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