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버핏' 돤융핑, 경영 일선 물러나 캘리포니아에 은둔
애플에 큰돈 투자…"애플은 놀라운 회사, 우리의 모델"

"애플은 중국에서 우리를 이기지 못했는데 애플도 결점이 있기 때문입니다.애플의 운영체제 같은 것들은 훌륭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앞질렀습니다."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 뼈아픈 패배를 안긴 오포(Oppo)와 비보(Vivo)의 공동창업자 돤융핑(段永平)의 말이다.

중국 스마트폰 상위 3위 브랜드 가운데 2개를 보유한 BBK(부부가오)를 세운 그는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둔형 억만장자다.

20일자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 응한 것은 10년 만의 첫 인터뷰라고 했다.

값싼 아이폰 복제품으로 취급받던 오포와 비보는 애플과 삼성전자를 중국 시장에서 밀어냈다.

애플은 이들 토종 브랜드에 밀려 중국 시장의 아이폰 판매가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오포와 비보가 애플을 제친 것은 애플이 현지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포와 비보는 값싼 기기에 고급 기능을 탑재하는 것을 포함해 애플이 꺼리는 전략을 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애플의 약점을 들추긴 했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애플에 큰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의 팬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돤은 "팀 쿡을 여러 행사에서 만났다.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그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이후 애플의 제품과 주가,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2015년에는 애플의 순이익이 5년 안에 1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아이폰을 자주 쓰는 그는 기기 4개를 가지고 다니느라 "정말 큰 주머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애플에 언제 투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해외자산 상당량이 애플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집도 애플의 본사와 가까운 미국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에 있다.

그는 "애플은 놀라운 회사다.

우리가 배울 모델"이라면서 "우리는 누구를 따라잡겠다는 생각은 없고 대신 스스로 발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돤은 투자 감각 덕분에 중국 언론에서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린다.

그는 56세로 마오쩌둥 공산 혁명의 발상지인 장시(江西)성에서 태어났다.

국유 진공관 업체에서 일을 시작해 1990년 즈음 중국이 민간투자에 문을 열었을 때 자유주의 개혁의 요람이었던 광둥성으로 가서 전자업체를 설립했다.

그의 첫 제품은 '쑤보르'라는 게임기였다.

1995년 쑤보르의 매출은 10억 위안(약 1천600억원)을 넘을 정도로 히트했다.

돤은 사업이 번창하던 1995년 새로운 분야에 진출했는데 이 패턴은 나중에도 이어졌다.

2번째 회사 이름인 부부가오(步步高)는 '점점 높아진다'는 뜻이다.

BBK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회사는 비디오CD와 MP3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를 생산했다.

자회사 부부가오 커뮤니케이션 이큅먼트는 2000년 즈음 중국에서 가장 큰 피처폰 메이커 가운데 하나가 돼 노키아, 모토로라와 경쟁했다.

돤은 40세이던 2001년 투자와 자선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로 했고 나중에 맨션을 샀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은퇴를 접고 회사로 돌아왔다.

2000년대 후반 BBK는 피처폰 판매 둔화로 와해 위기였다.

화웨이와 쿨패드는 1천위안(약 16만원) 안팎의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회사 문을 평화적으로 닫을지를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토론 끝에 새로운 회사 2개가 탄생했다.

돤의 '제자' 천밍융이 세운 오포는 음악 플레이어를 팔다가 2011년 스마트폰으로 확대했다.

2009년 BBK는 비보를 세웠는데 선웨이가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돤은 "휴대전화 제조는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이 분야에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브랜드 모두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아이폰은 혁신적인 앱 시스템과 우아한 인터페이스로 이용자를 사로잡았으며 블랙베리는 기업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오포와 비보는 현지 스타들을 활용한 마케팅과 중국 전역의 광범위한 판매망으로 승부를 걸었다.

부담 없는 가격의 이미지로 젊은층에 다가갔고 이후 고가폰 시장까지 발을 넓혔다.

오포와 비보의 제품은 이제 아이폰을 충전속도나 메모리, 배터리 수명에서 앞서곤 한다.

시장조사업체 IDC 추산에 따르면 오포와 비보는 지난해 중국에서 스마트폰 1억4천700만대를 팔아 화웨이(7천660만대), 애플(4천490만대), 샤오미(4천150만대)를 따돌렸다.

오포와 비보 모두 전년보다 2배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 4분기 오포와 비보는 각각 중국 시장의 1위와 3위였고 화웨이는 2위였다.

이들의 전략은 특히 중간 가격 제품이 주로 팔리는 중소도시에서 잘 통했다고 IDC의 애널리스트 테이 샤오한은 말한다.

오포와 비보는 홈그라운드 밖에서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4분기 세계 시장에서 오포와 비보는 4위와 5위였다.

오프의 판매량 가운데 4분의 1 정도는 인도 같은 시장에서 나온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오포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지켜온 정상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돤은 여전히 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점점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캘리포니아에서 기자인 아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즐긴다고 했다.

이사회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오포와 비보를 "방해"할까 봐 회사에 대한 정보 대부분을 인터넷에서 얻는다고 그는 말한다.

오포와 비보는 라이벌 샤오미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샤오미의 공동창업자 레이쥔은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한때 중국 시장 1위였던 샤오미가 점유율을 빼앗긴데 대해 중국 전역에 유통망을 구축한 회사들이 "불균형 정보"를 이용해 소비자를 속인 탓이라고 말했다.

돤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면서 "정보 불균형을 말하는 것은 내심 소비자가 바보라고 믿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요즘 주식 투자에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는 2006년에 버핏과 점심을 먹는데 당시로써는 역대 최대 금액인 62만100달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넷이즈 창업자 딩레이(丁磊)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뉴욕증시에서 거래되는 넷이즈가 닷컴버블 붕괴로 된서리를 맞았을 때 돤은 2002년 불과 200만달러로 5% 지분을 주당 16센트에 매입했다.

그는 넷이즈 주가가 40달러에 이르렀을 때 주식 대부분을 팔았다고 전했다.

돤은 고급 술 마이타이로 유명한 구이저우마오타이 주식도 2012년말 180위안에 샀는데 이 회사 주식은 현재 370위안 이상이다.

그는 회사의 승계를 고민하고 있지만 자신이 회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오래전에 분명히 했다"면서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 나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