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글로벌 경제협력의 기본방향을 결정하는 ‘공동 선언문(코뮈니케)’에서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을 배격한다’는 문구가 2년 만에 빠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입김 때문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재협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열린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공동선언문에 “교역이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강화하는 데 노력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통상 관련 입장을 담았다. G20은 2015년부터 선언문에 보호무역주의 배격에 관한 문구를 담아왔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의장국인 독일 등 몇 개국이 미국 대표단을 의식해 회의 초기부터 보호무역주의 배격에 관한 문장을 수정 또는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통상 이슈가 ‘뜨거운 감자’였다. 그동안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누가 더 많이 돈을 풀 것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여 왔으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보호무역주의 현실화가 발등의 불이 됐다.

G20 회의에 참석한 므누신 장관은 코뮈니케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이보다 더 만족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자유무역을 믿지만 무역은 공정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재검토돼야 하고 WTO도 너무 낡은 만큼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므누신 장관은 “WTO의 어떤 부분은 시행되지 않고, 어떤 부분은 미국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더 공격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NAFTA 재협상과 WTO 탈퇴 검토 등을 언급했다. 지난 1일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정책보고서에서도 WTO 내 무역분쟁기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며 미국 관련 무역 분쟁에선 미국법을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외신은 “프랑스와 중국 등 몇몇 나라 대표단이 ‘보호무역주의 배격’ 문구를 넣기를 주장했으나 대부분 회원국은 문구 수정을 요구하는 미국 측 주장을 묵인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