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트럼프의 탈달러 정책…왜 '한국' 최대 피해 받나
요즘 들어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미국이 ‘강(强)달러’를 포기한 것(탈(脫)달러 정책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보다 ‘약세’가 국익에 맞는다고 언급했다.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교역상대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환율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몇 차례 고비(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자유변동환율제 도입 등)가 있었지만 강달러 정책은 유지됐다. 각국 간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 증진에도 기여했다.

미국의 강달러 정책이 흔들렸을 때는 1980년대 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통화에 초점을 맞춘 강달러 정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자체 해결방안을 모색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달러의 수모’라고까지 불렸던 플라자 합의로 경상수지 적자가 줄어들자 곧바로 미국은 강달러 정책으로 복귀했다. 1995년 4월 달러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맺은 ‘역(逆)플라자 합의(‘루빈 독트린’이라 부름)’다. 때맞춰 미국 경제가 ‘신경제 신화’로 호황을 보인 데다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달러 정책이 쉽게 제자리를 잡았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트럼프의 탈달러 정책…왜 '한국' 최대 피해 받나
그 결과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특히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쌓인 ‘쌍둥이 적자(무역 및 재정 적자)’로 달러가 더 이상 중심통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고 언급함에 따라 22년 만에 ‘루빈 독트린(강달러 선호)’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 조짐도 감지된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던 문제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수지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달러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트리핀 딜레마는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성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중심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낮아져 공급된 통화가 환류되는 메커니즘이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제통화제도 개혁에 공감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제2 플라자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주말 독일 바덴바덴에서 끝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서울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경상흑자 4% 룰’(국내총생산 대비 4%를 웃도는 경상수지흑자국은 시장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재차 주목을 받은 것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강달러 정책의 지속 여부는 ‘트럼프 정부가 과연 강한 달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재건을 위해 뉴딜과 감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쌍둥이 적자가 확대되면 트럼프 정부의 정책 구상은 어려워진다.

강달러 정책이 흔들리면서 어느 국가보다 한국이 문제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내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올 들어 불과 2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원·달러 환율은 70원 이상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달러 강세를 예상했던 국내 수출업체와 달러투자자로 본다면 ‘환율 쇼크’에 해당하는 절상 폭이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해 성장률이 2.6%로 추락했고 올해는 2%대 초반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편승해 우리 여건과 벤치마크 지수 간 괴리에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화거래세’ 도입 등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회복하거나 과다한 경상수지흑자를 줄여나가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