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커 룰 폐지 이후 헤지펀드 기승
반기업 정서, 헤지펀드 방어 약화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엘리엇 매니지먼트 3차 공격…삼성전자 운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야심작인 ‘도드 프랭크법(단일금융법)’을 수정 보완할 것을 명령했다. 핵심은 헤지펀드 활동 규제가 주목적인 ‘볼커 룰’ 폐지다. 월가는 3대 지수 사상 최고치로 화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증시 흐름에 만족하면서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피력했다.

취임 이후 한 달을 맞으면서 트럼프 정부가 지향하는 대외정책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이원적 전략(two-track strategy)’이다. 무역과 통상은 ‘보호주의’를 추구해 미국 경제의 고질병인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은 자본을 매개로 미국의 국익과 세력 확장을 꾀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부활시키려는 의도가 감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미국의 금융 주도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풀어 자본과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 그리고 시장 참가자가 뛰놀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도드 프랭크법과 볼커 룰이 폐지되면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헤지펀드가 ‘제2의 전성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앨프리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에게서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결성한 뒤 카리브해 연안의 버뮤다,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북동부 등과 같은 조세회피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해 왔다.

투자전략은 ‘수동적’ 자세가 지배적이었다. 수익을 내는 주체는 투자 대상이고,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을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만큼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경우 레버리지 비율이 100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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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투자전략에 변화를 몰고온 것은 2008년 금융위기다. 1990년 이후 각종 위기에 직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국제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헤지펀드가 증거금이 부족한 ‘마진 콜’을 당하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기존 투자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금융위기로 악화된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도드 프랭크법의 핵심인 볼커 룰은 헤지펀드의 상징이자 활동지표인 레버리지 비율을 5배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 활동이 위축 국면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1차 공격),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선 요구 과정(2차 공격)에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엘리엇 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환경에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투자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뀐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 등과 같은 수단을 모두 동원하기 때문에 피해국과 피해 기업이 겪는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경제정책이 무력화되면서 경영권 방어가 더 어려워진다. 사회적으로는 국부 유출과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병리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비롯한 각종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인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은 ‘윔블던 현상’이 심한 국가다. 윔블던 현상이란 국내 금융시장에서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이 판치는 현상을 말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경제의 대표 기업일수록 외국인 비중이 50%를 넘은 지 오래다.

한국은 제도적으로는 ‘규제 왕국’이다. 특히 상법 개정안이 문제다. 외국 자본, 한국 기업 중 누구를 위한 개정인지 불분명하다. 더 강한 ‘정신력(수익 추구)’과 ‘전투력(규제 완화)’을 갖춘 외국 자본(엘리엇 매니지먼트 3차 공격)은 몰려오는데, 방어해야 할 한국 기업은 ‘창과 방패(경영권 보호)’를 내려놓게 하고 ‘장수(최고경영자)’마저 좀비화하고 있다.

우리 국민 사이에는 ‘외국’이란 접두어만 붙으면 국내에서 공부하고 기업과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보다 우대하는 풍토가 남아 있다. 외환위기 잔재인 이런 역차별 요소가 사라지지 않으면 외국 자본의 최후 보루인 우리 국민의 가치판단이 무너지게 된다. 그때는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지금 이 시간도 반(反)기업 법과 공약을 쏟아내는 국회의원과 차기 대선주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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