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에서 연간 이민자 수를 10년 내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란 이라크 등 테러위협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과 함께 미국 문호를 닫는 대표적인 조치로 법안 심사 과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 10년내 이민자 절반 줄인다
◆공화당, 부모·형제 이민초청 금지 추진

미 공화당 소속의 톰 코튼·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은 지난 7일 의회에 ‘미국인 고용 강화를 위한 이민 개혁법안(RAISE)’을 발의했다. 법안은 미국의 시민권과 영주권 소유자들이 미국으로 초청할 수 있는 가족 범위를 대폭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가 배우자와 부모, 형제, 자녀를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배우자와 21세 미만 자녀만 초청이 가능하다. 부모와 형제자매, 21세 이상 자녀는 초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간호가 필요한 노부모에 한해 갱신이 가능한 비자 발급이 허용된다. 이런 노부모라도 미국 내 취업이 금지되고 메디케어(노인 대상 공적 의료서비스)·식비 등 지원은 받지 못한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이민자 수가 적은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비자(입국사증)를 내주는 ‘추첨 비자제도’도 폐지된다. 난민에게 발급하는 영주권 수도 연간 5만개로 제한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첫해 105만명 수준(2015년 기준)인 이민자 수가 64만명으로 41% 줄어든다. 감축 폭이 점점 커져 10년 후엔 이민자 수가 54만명으로 줄게 될 것으로 코튼 의원실 측은 추산했다.

◆이민 규제 강경론자 세션스 인준

법안 공동 발의자인 퍼듀 상원의원은 “법안 취지는 교육 수준이 낮은 이민자를 줄여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 경쟁을 줄이고, 고숙련 기술인력의 미국 이민을 돕는 것”이라며 “올해 안에 상원 표결이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 주도 아래 연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두 의원은 법안 발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상의했다고 밝혔다. 이민규제 강경론자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내정자가 8일 상원 인준을 통과한 것도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멕시코 장벽 설치, 불법 체류자 강제 추방 등 강성 이민공약을 기획하고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테러위협 무슬림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금지 행정명령 △비(非)이민 비자제도 손질 △멕시코 장벽 설치 추진 △불법 체류자 강제 추방 등 굵직한 이민 관련 현안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민규제 찬반 여론은 팽팽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 쏠리고 있다.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이민규제 강화 방안이 힘을 받을지, 기세가 꺾일지 결정 날 전망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제9 연방항소법원은 7일 원고 측인 워싱턴·미네소타주와 피고 측인 미 법무부 변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항고심 구두 변론을 시작했다. 행정명령의 운명은 연방 대법원에서 결정 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2~4일 여론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지지하는 응답이 55%에 달했다. CBS방송과 CNN-ORC 조사에서는 반대하는 응답이 각각 51%와 53%로 찬성보다 더 높았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