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따라 중동·아프리카 7개국 출신 입국자에게 발급한 미국 비자를 잠정 취소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국무부는 공지문을 통해 “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소말리아 리비아 예멘 7개국 국적자에게 발급한 이민·비이민 비자를 잠정 취소한다”고 밝혔다. 외교관과 정부기구, 승무원 비자는 제외하며 취소된 비자 가운데 미국 정부가 국익을 고려해 개별 심사에서 예외를 인정해주는 경우 회복될 수 있다.

이 공지문은 에드워드 라모토스키 국무부 차관보 명의로 지난달 27일 작성됐다. 국무부는 이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근 반이민 행정명령과 관련한 소송에서 정부 측 변호인이 공지문을 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면서 공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따른 파장이 광범위하다”며 “미국에 살고 있는 7개국 출신 난민과 학생, 직장인의 지위가 위태로워졌다”고 전했다. 그레그 첸 미국이민변호사협회 이사는 “사람들의 입국을 막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도 일단 미국을 떠나면 배제하겠다는 뜻”이라고 우려했다.

질리언 크리스턴슨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발령 시점에 이미 미국에 합법적인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 밖으로 나갔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각에선 추방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이민 비자를 받은 7개국 출신 미국 거주자는 3만1804명이다. 그외 수천명이 학생비자 등 비이민 비자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꿋꿋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외국 정상과의 거친 통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가 막말과 비난을 퍼부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많은 나라가 지독하게 우리를 이용한다”며 “그들은 거칠고, 우리도 거칠게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호주를 무척 존경하고 한 국가로서 호주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지금껏 거의 쓰이지 않은 ‘의회검토법’을 동원해 트럼프 대통령 지원에 나섰다. 하원은 지난 1일 회의를 열고 이 법을 활용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 도입된 두 건의 규제를 폐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석탄 채굴을 마친 업체에 수질을 개선하도록 하고 물줄기 흐름을 철저하게 복원하도록 한 내무부 규정과 에너지 회사들이 원유와 가스, 광물 채굴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외국 정부에 준 돈을 보고하도록 한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96년 도입된 의회검토법을 활용하면 지난해 6월 이후 만들어진 연방 규정을 의회가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과반의 표를 얻으면 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