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신미국] 공식업무 첫날부터 칼 빼든 트럼프…세계무역 질서 '혼돈 속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식 업무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추진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상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1993년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와의 무역적자가 거의 제로(0)에서 600억달러로 늘었고 수많은 일자리를 멕시코에 빼앗겼다”며 “취임 후 100일 내 NA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상대국들이) 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공언했다. TPP 탈퇴도 100일 이내에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론 취임 후 100일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집권 즉시 행정명령 2호로 두 무역협정을 손보자고 하는 것은 트럼프식 ‘속전속결’ 일처리 스타일을 보여준다.

CNN은 23일(현지시간) “이 행정명령은 트럼프가 대선 기간에 제시한 통상 정책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진짜로 실행된다는 신호를 민주당과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에게 보내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선공약 지키는 트럼프

2015년 10월 타결된 TPP는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최대 다자 자유무역협정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해 온 아시아 중심 정책의 핵심축이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 패권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추진됐다.

트럼프는 그러나 대선 기간 TPP 등 다자 무역협정 체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며 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가 간 양자 무역협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BC는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고 개별 국가들과 무역협상을 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TPP를 폐기하는 일은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TPP 폐기를 원했던)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을 기쁘게 하겠지만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진공 상태를 만들 것이고 중국이 손쉽게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생산 비중 강제 조정할까

NAFTA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국이 1994년 발효시킨 협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블록 중 하나다. 지난 22년간 이 지역의 무역관계를 규정해 온 협정은 순식간에 힘을 잃을 위기에 몰렸다. NAFTA는 협상국의 단순 통보만으로도 재협상이 가능하다. 재협상을 시작한 뒤 180일까지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탈퇴가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캐나다 및 멕시코 정상과 만나 NAFTA와 이민 문제, 국경 치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NAFTA 회원국 내 자동차 생산량 비중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일정 물량 이상을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강제규정을 넣자는 아이디어다.

재협상에서는 국경세 부과 문제도 논의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35%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NAFTA 재협상을 성공시키려면 친정인 공화당 반발도 넘어야 한다.

“美 기업은 미국에 머물러야”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NAFTA와 TPP,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한데 묶어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는 ‘재앙’이라고도 한 만큼 재협상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선 유세 때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주도한 한국과의 무역협정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일자리 10만개를 빼앗겼다”며 “원래 좋은 협상이어야 하는데 엄청난 일자리만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 전 포드·다우케미컬·벨·록히드마틴 등 제조업체 대표들과 조찬을 하며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미국에 머무는 것”이고 “기업들이 외국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제품엔 막대한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