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신미국] 환호만큼 컸던 시위대 함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45대 대통령의 공식 취임 행사가 열린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미국 워싱턴DC의 날씨는 스산했다. 짙은 안개와 보슬비가 섞인 차갑고 습한 날씨만큼이나 스산한 것은 도시 전체의 분위기였다. 새 대통령을 맞는 환호는 대통령 취임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함성에 묻혔다. 도시는 내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워싱턴DC의 저녁 거리를 돌아봤다. 캔자스시티에서 왔다는 대학생 저스틴 홀씨(22)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왜 먼 길을 왔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에게 트럼프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청바지 차림의 시위대는 오전 시위 때 불탄 자동차 옆으로 트럼프 비난 구호를 외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옆으론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각 지역 단체 및 유지들이 주최하는 수백개의 갈라쇼에 참석하려는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인파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옷차림부터 생각까지 다른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충돌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광경이었다.

이날 시위는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킬 정도로 격렬했다. 취임식 당일 200여명이 체포됐다. 21일엔 여성 단체 주도로 시위 규모가 50만명으로 늘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300여만명이 동조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들은 ‘미국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9년부터 여덟 번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는 한 동포는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의 이런 분열을 대외 갈등 구도를 통해 묻어버리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안타까워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