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닉슨 中방문 전 "미래엔 中견제 위해 러 필요" 예상

미국 외교가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93) 전 국무장관이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정권'의 초대 국무장관에 지명된 일에 후한 점수를 줬다.

14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미·중 관계 증진단체 '100인 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틸러슨의 국무장관 지명이 "좋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키신저는 "국무장관에게 요구되는 자질 하나하나를 모두 갖춘 사람은 없다"며 틸러슨을 국무장관에 지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선택에 공감했다.

키신저는 또 틸러슨의 친(親) 러시아 성향을 문제 삼는 일각의 비판에 "그가 러시아와 너무 친하다는 주장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그는 틸러슨이 "러시아와 친하지 않았다면 엑손모빌 대표로서 쓸모가 없었을 것"이라며 "난 그런 주장들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틸러슨 국무장관 내정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7년 인연을 자랑하는 인물로 2012년 러시아 정부훈장인 '우정훈장'(Order of Friends)'까지 받았다.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등을 통해 러시아와 다양한 합작사업을 하는 엑손모빌의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틸러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주도한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도 반대했다.

최근 트럼프가 미국에 맞설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곳곳에서 마찰을 빚는 와중에 친러 성향의 국무장관을 지명하면서 러시아를 '중국 견제용'으로 활용하려는 심산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틀을 깬 트럼프의 행보에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큰 역할을 한 키신저의 과거 '러시아 회귀'(pivot to Russia) 관측도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베이징지국장을 지낸 존 폼프렛은 14일 "45년 전 키신저가 그린 '러시아 회귀'를 트럼프가 실현하는가"란 제목의 기고문을 WP에 싣고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키신저의 '통찰력'이 돋보인 일화를 소개했다.

1972년 2월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키신저는 미·중 간 단절을 종식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앞서 닉슨을 만났다.

키신저는 당시 닉슨에게 "20년 이내에 당신만큼 현명한 계승자가 나와 중국에 맞서 러시아에 기우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파워 게임'의 균형을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면서 "지금 당장은 러시아를 바로잡고 채찍질하려고 중국이 필요하지만 미래엔 반대로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키신저의 예상대로 정치·경제면에서 급부상한 중국은 현재 미국과 'G2'(주요 2개국)를 형성하며 남중국해, 무역 등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