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는 한때 나라의 산업·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며 '시리아의 진주'로 불렸으나 5년간의 내전을 겪으며 파괴와 죽음으로 얼룩진 시리아사태의 상징적 지역이 됐다.

아랍어 명칭이 '할렙'(할랍)인 알레포는 기원전 2000년 이집트 문헌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기원전 18세기에 이미 이 일대 얌카드 왕국의 경제중심지로 융성한 알레포는 히타이트왕조에 무너졌고, 이어 로마의 지배를 거쳐 6세기 아랍 무슬림에 장악됐다.

현대로 들어서 시리아 독립 후 알레포는 2000년대 중반 인구 230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고대 도시 유적과, 유서 깊은 구시가지 올드시티는 주민과 관광객들로 넘쳤다.

알레포 인구 대부분은 수니파 아랍계이지만, 쿠르드계와 투르크멘계, 아르메니아계 등이 평화롭게 공존했다.

시리아에서 기독교도가 가장 많이 분포한 곳이기도 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리아로 처음 확산했을 때까지만 해도 알레포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나 물리적 충돌도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2년 7월 반군 조직들이 알레포에서 시리아군과 충돌하고 나서부터 대립이 가장 첨예한 격전지가 됐다.

시리아군이 반군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면서 도시는 곧 정부군이 장악한 서쪽과 반군이 장악한 동쪽으로 쪼개졌고 이후 어느 쪽도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한 채 동서 분할구도가 4년간 이어졌다.

끝없는 공습과 포격에 도시 곳곳이 파괴됐고, 반군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인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2013년에는 구시가지 대(大)모스크의 11세기 첨탑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문화유산도 전쟁에 희생됐다.

올해 7월 러시아를 등에 업은 시리아군이 알레포 동부를 봉쇄하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자 전황은 시리아군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시리아군의 보급로 차단으로 알레포 동부에 사실상 갇힌 민간인 25만∼30만명은 식량과 의약품을 비롯해 물자 부족을 겪으며 인도주의 위기가 고조됐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공습과 교전에 도시 곳곳이 파괴됐고,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시리아내전 감시단체에 따르면 러시아와 헤즈볼라 등을 업은 시리아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한 지난달 15일부터 휴전이 타결된 13일까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인명피해가 6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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