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날개를 달았다. 최근 한 달간 루블화 가치와 증시가 급등했다. 미끄럼을 타던 경제도 반등세를 탔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경제제재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디폴트(채무 불이행) 직전까지 몰린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 배경으로 러시아를 둘러싼 외교안보 및 석유산업 지형 급변이 꼽힌다. 지난달 8일 미국에서는 러시아에 유화적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달 30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비OPEC 산유국은 원유 감산에 전격 합의했다. 13일엔 트럼프 당선자가 국무장관에 친(親)러시아 인물을 낙점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푸틴 '브로맨스'에 러시아 몸값 뛴다
◆커지는 미·러 ‘밀월’ 기대감

로이터통신은 월가 투자분석가의 말을 인용,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20일 취임 후 러시아 제재를 완화할지 검토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과 대조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초대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내정한 점도 호재다. 틸러슨은 2011년 러시아와 에너지협력협정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경제제재를 반대한 전력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 고문인 유리 우샤코프는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러시아 인사들은 틸러슨과 좋은 사업적 관계를 맺고 있다”며 “그는 아주 무게 있는 인사이며 자기 분야에서 큰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와 푸틴 러시아 정부 간 관계 개선 전망은 러시아 경제지표에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루블화 가치는 2.7% 급등해 달러당 60.9루블을 기록했다. 한 달 동안 8% 뛰어올랐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1.5% 하락하는 등 다른 신흥국 통화는 강(强)달러 여파로 맥을 못 췄다. 같은 기간 러시아 증시의 RTS지수는 10% 점프했다. 연초 대비 상승률이 53%에 달했다.

◆경제 펀더멘털도 개선 전망

러시아의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0.4%(연율 환산 기준)였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전기 대비 성장률로 따지면 3분기 연속 플러스를 보이며 회복세를 탔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소비심리가 개선되면서 내년 1분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월가 투자은행(IB)들은 내년 러시아 경제가 1.2% 성장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러시아의 무역수지 흑자도 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지난 8월 49억달러에서 9월 74억달러, 10월 66억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10%를 웃돈 물가상승률은 9월 이후 6%대로 뚝 떨어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5년 만에 OPEC과 원유 감산에 합의한 것을 계기로 글로벌 경제에서 영향력을 되찾았다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는 비OPEC 국가 중 산유량 1위다. 하루 생산량을 사우디의 절반 수준인 30만배럴 줄이기로 하면서 감산에 회의적인 분위기를 돌려놨다.

◆월가 러브콜까지 받아

덴마크 IB의 한 투자전략가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트럼프 당선자의 압박을 받는 다른 신흥국보다 러시아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시장 일부에선 국제유가 상승과 경제성장 전망에 러시아 증시가 내년 말까지 13%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 7일 발표한 글로벌 보고서에서 내년 러시아에 투자해 얻는 수익률이 10%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교역량 감소와 고금리, 강달러 정책에 따른 외화자금 유출을 우려하는 다른 신흥국과 구분된다는 점에서다. 루블화 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지 않으면 러시아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로선 환차손 위험이 낮아진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