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개월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나면서 고전해온 독립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화통화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1979년 미국과 대만 간 공식적인 단교 후 처음으로 양국 정상 간 전화통화가 성사되면서, 차이 총통이 중국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타격을 가하는 한편 미국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키우는 정치적 반전을 모색하고 있어 보인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37년 만에 이뤄진 양국 정상의 전화통화가 차이 총통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하나의 성(省)급으로 취급하는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대만과 공식 관계를 단절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차이 총통이 이끄는 민주진보당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며, 차이 총통 역시 지난 5월 정식 취임 후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과 함께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추구하자, 이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중국 관광객의 대만행을 막는 등 경제적으로 조이는 한편 국제 외교무대에서 대만의 활동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압박을 가해왔다.

이로 인해 대만의 경제가 갈수록 침체하면서 취임 초기 70%에 달하던 차이 총통 지지율은 지난달 말 34%까지 떨어졌다.

WSJ는 중국이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을 동원해 대만의 여론 분열을 시도하고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라며 압박하는 바람에 차이 총통이 중국이 만들어 놓은 봉쇄에 갇혀 제대로 된 활동을 못 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과의 전화통화라는 차이총통의 승부수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AP통신과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신이 트럼프-차이잉원 전화통화 사실을 보도하고,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와 트럼프가 이를 확인한 데 이어 대만 총통부가 성명을 통해 약 10분 동안 전화통화를 하며 대만의 경제 개선과 국방 강화를 논의했다고 밝히자, 대만 안팎에서 차이 총통이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대만 중앙통신은 '역사적인 대화'라고 보도했고, 대만 내 다른 매체들도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특히 대만 안팎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차이 총통의 이번 접촉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미국과 대만 관계의 '변화'로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 내의 독립성향 세력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더라도 대만과 외교관계를 재개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번 전화통화 성사 이전에도 차이 총통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접촉을 수차례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트럼프의 당선 직후 차이 총통은 축하 전문을 보내고 양국의 경제 협력 확대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는 "(차이 총통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이 안심시켜주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라면서도 "공식적인 방식을 택한 것은 다소 부주의했다"고 말했다.

글레이저와 다른 전문가들은 대만 정부가 이 전화통화를 기회로 삼으려 한다면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 업체 파크 스트래티지스의 아시아 전문가인 션 킹 선임 부대표는 트럼프 당선인과의 전화통화는 차이 총통으로서는 "중요한 외교적 쿠데타"라고 평했다.

지난해 11월 국민당 소속의 마잉주 전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66년 만에 양안 정상회담을 열어 화해를 자축했으나, 차이 총통은 이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차이 총통과 민진당 지지자들은 마 전 총통 시절 중국과 지나치게 밀착하는 바람에 대만 경제가 중국 의존형으로 바뀌고 민주주의가 취약해졌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대만 내에서는 트럼프 당선인과 차이 총통의 전화통화를 계기로 미국-대만 간 공식적인 관계에 변화가 이뤄진다면 차이 총통 지지율에 대한 반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