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혐오 안 하지만 다민족 사회에선 민주주의 불가능" 주장
유례없는 반(反) 난민 정서 횡행 속 우익 민족주의 세력 득세

4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far-right) 국가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나치 지지자들이 세운 오스트리아 자유당, 그리고 유럽연합(EU) 탈퇴와 반(反) 난민 정책을 공약을 내세운 이 당의 노르베르트 호퍼(45) 후보를 지칭할 때 현지 언론매체 대부분은 극우로 표현한다.

하지만 호퍼 후보는 극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국 CNN 방송은 3일 '힙스터(최신 유행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선동가인가? 오스트리아 극우의 젊은 얼굴'이라는 현지발 기사를 통해 이들이 과거 나치와 같은 극우와는 선을 긋고 있지만, 이는 백인 기독교도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지키려는 정체성을 가리는 허울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체성 운동'이라는 단체는 수도 빈의 광장 소재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90m짜리 조각상에 거대한 검은 천으로 두르고 '이슬람화를 바라지 않는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덴마크·독일 등으로 확산하는 '정체성 운동'은 노골적인 인종주의·나치와는 거리를 두며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슬람교도 배척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의 유럽"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셔츠를 입은 '정체성 운동'의 회원 마르틴 젤너(27)는 "우리는 유럽의 애국자들에게 비폭력적인 행동을 가르치려고 한다"며 "비폭력이 원칙이고, 혐오 발언을 실제 행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말쑥한 외모의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힙스터로 불린다는 그는 "우리는 네오나치가 아니라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민자를 혐오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가 소수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이런 의견을 반유대주의나 인종주의 없이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런 반응에 대해 이민과 세계화를 거부하는 백인 기독교 정체성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념을 가리려는 겉치장이라고 표현했다.

젤너는 "우리 세대는 이런 대규모 이민이나 이슬람화, 인구 교체를 원하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며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소수가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인종주의자가 되는 사회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유튜브에 올려진 일련의 포스트를 보면 이민자의 급격한 증가로 백인 기독교도가 절멸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 비친다.

그는 "나의 가장 큰 공포는 언젠가 인구 구성이 민주주의를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대규모 이주로 사회의 민족 구성이 분열되면 공동의 가치·역사·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는 진짜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인종 다원주의자'이며 백인 기독교 문화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세계화가 다문화주의를 강요하고 그것이 개별 국가의 민족적·문화적 가치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빈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이슬람화'라고 주장하는 젤너는 이슬람교도와 오스트리아의 가치는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한편 이슬람교도의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열렬한 팬이라며 유럽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인구 15%는 외국인이며 이중 절반 정도가 다른 EU 회원국 출신이다.

또 인구의 7%는 이슬람교도다.

지난해 유럽에 도착한 중동 출신 난민 100만 명 중 최소 70만 명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갔다.

대부분은 독일이나 스웨덴 등으로 향했고 오스트리아에 남은 난민은 9만 명 정도지만, 오스트리아의 반(反) 난민 정서는 극에 달했다.

정부는 국경에 장벽을 치고, 하루 3천200명에게만 입국을 허용했다.

하루 80명만 정착 신청을 받아줬고, 이조차도 연간 3만7천500명으로 제한했다.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이나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극우 정당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진 반 난민 정서에 힘입어 세를 늘렸다.

상대 후보인 녹색당 출신의 알렉산더 판데어벨렌(72)에 비해 훨씬 젊은 호퍼 역시 자신은 '극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러시아 매체 R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극우'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나는 극단주의를 싫어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우파지만 극우는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