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만 4명 배출…백악관 주름잡은 '골드만삭스 사단'
“골드만삭스는 테드 크루즈(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정치권의 유착을 강력 비난했다. 그는 경선 경쟁자인 크루즈가 선거관리위원회 신고 없이 골드만삭스에서 선거자금을 대출한 것과 클린턴이 골드만삭스에서 고액 강연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워싱턴에서 오물을 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발표되는 트럼프 정부의 면면은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CNN머니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트럼프와 골드만삭스의 인연”이라고 했고, 르몽드는 “백악관에 골드만삭스가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대통령 선거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지만 골드만삭스가 정부 요직에 진출하는 관행은 그대로인 듯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내각 접수하는 골드만삭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달 30일 게리 콘 골드만삭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났으며 그를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에 임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예산관리국(CBO)은 백악관 최대 조직으로 예산 문제를 총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가 CBO 국장이 되면 재무장관에 내정된 스티븐 므누신,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정해진 스티브 배넌에 이어 트럼프 정부에 참여하는 세 번째 골드만삭스 출신이 된다.

골드만삭스를 다니다 헤지펀드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을 창업한 앤서니 스카라무치도 입각이 유력하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일원으로 트럼프의 정권인수 작업을 돕고 있다.

‘골드만삭스 사단’의 미국 정부 진출은 역사가 깊다. 골드만삭스의 토대를 닦은 시드니 와인버그 회장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많은 정책 조언을 했다. 이후 골드만삭스는 미국 정부에 인재를 공급하는 ‘인재 파이프라인’이 됐다. 147년 골드만삭스 역사에서 13명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는데, 이 중 5명이 워싱턴에 진출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맡은 존 화이트헤드, 빌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등이다. 루빈을 포함해 골드만삭스는 역대 재무장관만 네 명을 배출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 때의 헨리 파울러, 조지 W 부시 정권의 헨리 폴슨, 최근 내정된 므누신 등이다.

◆타협 필요한 정부에 쉽게 적응

월스트리트의 다른 은행도 정부 인사를 배출한다. 잭 루 현(現) 재무장관과 스탠리 피셔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을 배출한 씨티그룹이 그런 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정부 삭스(Government Sachs)’로도 불릴 만큼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개인주의를 배제하고 협동심을 강조하는 문화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에서는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 다른 은행이 스타 애널리스트, 스타 트레이더를 내세워 마케팅을 펼칠 때 골드만삭스는 개인의 영광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직원에게 다른 직장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개인보다 공동의 이익, 나보다 동료의 성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타협해야 하는 정부에서 골드만삭스 출신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강한 결속력은 골드만삭스에서 나가더라도 이어진다. 최고의 인재를 뽑아 오랫동안 훈련시키는 인재양성 프로그램 덕분에 골드만삭스 출신은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는데, 이들이 곳곳에 진출해 구축한 네트워크가 큰 자산이다.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골드만삭스는 경쟁에 앞서 금융은 연줄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며 “정부 관련 사업은 매우 수익성이 높고 그들은 이런 일에 능숙하다”고 말했다.

지나친 유착 관계는 비판 대상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은 없다”고 버티던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한 것은 골드만삭스마저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집행할 담당자로 골드만삭스 출신이자 35세에 불과하던 닐 캐시캐리 재무부 차관보를 임명한 것도 당시 논란을 일으켰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