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코리아 퍼스트' 전략이 필요한 때
1980년대 등장한 공급 중시 경제학은 당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오일 쇼크 등을 경험하면서 케인스 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났고 새 대안을 고민하던 상황에서 흥미로운 아젠다가 제시된 것이다. 공급과잉에 따른 불황에 정부가 중심이 돼 대처하면서 수요를 견인하고 부양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케인스 경제학의 중심이라면, 공급 중시 경제학은 경제의 수요보다는 공급 측면에 주목했다. 감세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 의욕과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자극해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이 주장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들고 나온 레이건은 카터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는 대처 총리가 주목받았다. 노조의 장기 파업을 이겨내고 백기 항복을 받아내면서 대처 총리의 기업친화적 전략은 크게 주목받았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주장하고 실행한 이런 아젠다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정리됐고 비판론자들은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위 자본주의 3.0의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감세,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자유무역, 자유자본이동, 세계화 등이 강조되면서 세계 경제는 새로운 흐름을 맞았다. 물론 금융위기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국은 이런 흐름을 잘 이용해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 신흥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미국에는 트럼프 당선자 그리고 영국에는 메이 총리가 등장했다. 미국에는 남성, 영국에는 여성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면에서 레이건과 대처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한 배경과 이들의 주장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바뀌었다.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라는 반세계화적 흐름이 상호주의 실리주의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심각한 고령화 추세와 함께 글로벌 위기 이후 경제가 불안해지자 이들 국가의 국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대로 이민자에 반감을 키우기 시작했다. 급여와 사회보장에다가 연금까지 챙겨가는 모습을 보며 관용과 포용, 곧 ‘정치적인 올바름’은 사라지고 ‘너희들 챙기느라 우리가 힘들다’는 식의 노골적인 태도로 돌변해버린 것이다. 영국에서 유권자 연령과 유럽연합(EU) 탈퇴 찬성률이 정확하게 비례하는 모습은 이를 확인해준다.

사실 런던의 시티지역에 있는 금융회사들은 전 세계 주요 통화 표시 자금을 모두 취급하고 있다. 파운드, 달러, 엔, 유로는 물론 위안화 자금까지 조달 가능한 이 유로달러시장은 어떻게 보면 세계화의 상징적 존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장을 통해 엄청난 고용과 수익을 창출해온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해버린 것은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한다는 느낌이 들 만큼 충격적이다.

영국의 메이 총리는 이제 EU와 영국의 ‘질서 있는 이혼’ 과정을 주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트럼프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보호무역을 부르짖으면서 얻은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던 미국이 이제는 변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3.0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런 흐름들은 이제 자본주의 4.0으로 불러도 될 만한 무게를 가지고 우리를 덮치고 있다.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에게는 무너진 국가 리더십을 재건하는 것은 물론 변화무쌍한 세계의 지형을 날카롭게 읽어내면서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통해 상당한 발전을 이룬 한국이 이제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의 흐름하에서 어떤 전략을 통해 훌륭한 나라를 만들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독립변수가 변하면 종속변수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응전’이 필요하다. ‘아메리카 퍼스트’ ‘잉글랜드 퍼스트’의 흐름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우리도 ‘코리아 퍼스트’ 전략을 가동시켜야 한다. 과거의 리더십은 물러가고 새로운 시대와 흐름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 / 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