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이 주정부로터 받은 법인세 감면 혜택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가 28일 불법이라고 판정했다. 미 워싱턴 주정부가 보잉사의 신형 항공기 777X 제작과 관련,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제공한 세제 혜택이 WTO가 금지하는 보조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이번 판정이 대통령선거 이후 미국의 통상 문제와 관련해 나온 국제기구의 첫 결정이라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반응이 주목된다고 전했다.

보잉은 유럽연합(EU)의 에어버스사와 2004년 이후 12년째 WTO 제소를 주고받으며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칫 이번 WTO 판정이 미국과 EU 간 무역마찰로 확대될 수도 있다. WTO는 지난 9월 에어버스가 신기종 A350 개발을 위해 EU에서 받은 지원금 역시 불법 보조금에 해당한다며 EU가 이를 모두 회수하라고 판정했다.

에어버스는 보잉이 A350에 대응해 777X 모델을 내놓자 8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혜택을 받았다며 WTO에 제소했다. 보잉은 법인세 감면 혜택이 연간 5000만달러 수준이라고 반박했고, 미 정부도 80억달러는 부풀려진 금액이라고 일축했다. 업계는 보잉이 받은 세금 혜택이 20억~30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WTO의 결정에 아무런 구속력이 없어 두 회사 모두 면제받은 세금을 되돌려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판정을 근거로 미국과 EU가 수십억달러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WTO의 결정을 모두 무시해왔다고 전했다. 다만 차기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보복조치로 이어지며 긴장을 고조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