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서 3천명 반대 시위…유니세프 "아동상대 성범죄는 처벌해야"

터키에서 아동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유죄 판결을 뒤집고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안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터키 야권은 "아동 성범죄자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터키 시민 수천명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20일 터키 일간 휴리예트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이 추진 중인 아동 성폭행 처벌 관련 법안이 의회에 상정됐으나 야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안은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남성이 그 피해자와 결혼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 법안 초안에 따르면 이달 16일 이전에 "강제나 협박 없이"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경우 그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하면 법원 선고나 기소가 연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달 17일 의회 초안 심사를 통과한 이 법안은 약자를 성폭행하는 범죄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안이 의회 표결에서 통과되면 아동 성폭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이 풀려날 수도 있다.

터키의 주요 3개 야당과 여성 시민단체는 일제히 이 법안이 "강제 결혼을 독려하고 성폭행범들의 결혼을 합법화할 수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오메르 수하 알단 의원은 "만약 50~60대 남성이 11살 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몇년이 지나고 나서 그 피해자와 결혼한다면 그년는 그 결과로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도 전날 성명을 내고 "아동 대상 성범죄는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이고 어떤 경우에도 어린이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프 불리에락 유니세프 대변인은 AFP통신에 "최근 터키 의회에 제출된 법안은 아동 성폭행범을 사면해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터키 시민 3천여명은 전날 이스탄불에서 이 법안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했다.

어린이도 참가한 이번 시위대는 이스탄불 시내를 행진하며 "우리는 입을 다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성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터키에서는 현행법상 17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결혼이 금지된다.

이에 따라 터키의 병원과 학교는 16세 이하 여성이 출산하면 조혼 가능성에 따라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결혼을 한 16세 이하는 재판 대상이 될 수 있고 관련 남성은 나이와 상관없이 처벌 대상이 된다.

이에 앞서 베키르 보즈다 터키 법무장관은 지난 18일 "(터키에서) 조혼의 경우는 흔하다"며 "그 법에 따르면 교도소로 가야 할 남성이 약 3천명에 달한다"며 이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법원은 (조혼이 이뤄진)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오로지 16세의 나이만을 기준으로 선고한다"며 "조혼이 그 가족의 전통에 따라 이뤄지는 것인지 아닌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의 논란이 지속하자 보즈다 장관은 전날에도 "그 법안은 성폭행범을 사면하는 게 아니다"면서 "이는 터키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터키는 올해 5월 헌법재판소가 상대방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15세를 기준만으로 아동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려 한 차례 거센 논란이 일었다.

터키 헌재는 이 법률 조항을 한정 위헌으로 판단해 내년 1월까지 시한을 주며 대체 입법을 지시했지만, 아직 대체입법안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제네바·카이로연합뉴스) 이광철 한상용 특파원 minor@yna.co.kr,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