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유대인 군단' 앞세운 트럼프…아베보다 이스라엘 대사 먼저 만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7일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을 때 회담장에는 세 명이 배석했다.

한 명은 차기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그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였다. 이방카 부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집행위원이지만 인수위에는 마이크 펜스 위원장을 포함해 6명의 부위원장이 포진해 있다.

현지 언론은 이방카 부부의 등장을 두고 네포티즘(족벌주의)을 우려하면서도 미국의 권력지형을 잘 보여주는 상징으로 묘사했다. 유대인의 막강한 영향력을 또다시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맏사위 쿠슈너는 유대인이며 이방카는 쿠슈너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했다.

아베 총리가 국가원수로는 처음 트럼프 당선자와 회동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먼저 실속을 차린 쪽은 유대국가 이스라엘이었다. 주미 이스라엘대사가 아베 총리와의 회담 하루 전에 이미 트럼프 당선자를 찾았다는 후문이다. 이스라엘 매체 왈라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가장 먼저 만나고자 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취임 이후 보자며 거절했다.

◆“쿠슈너 백악관행은 기정사실”

트럼프 당선자의 ‘눈과 귀’ ‘막후실세’ ‘오른팔’ 등으로 불리는 쿠슈너는 백악관 입성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쿠슈너는 정통 유대교 신자로 랍비(유대교 율법학자)와 여러 시간 토론할 정도로 신앙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민주당 성향의 쿠슈너가 공화당 인사들과 매끄럽게 융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가 백악관에서 핵심 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쿠슈너는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를 부위원장으로 끌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티 부위원장은 검사 시절 쿠슈너의 아버지 찰스 쿠슈너를 뇌물제공 등의 혐의로 앨라배마 교도소로 보낸 인물이다. 쿠슈너는 지난 9월 당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면담했을 때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친족등용금지법인 정부조직법(3110조)에 따라 부처 장관 등으로는 내각에서 일할 수 없다. 다만 백악관 업무는 가능하다는 게 미국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국민의료보험 개혁위원회를 맡아 논란이 됐을 때 미국 법원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은 정부조직법상 공무원 지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쿠슈너가 무보수로 근무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더욱 줄어든다.

일부 이스라엘 언론은 쿠슈너의 아내이자 트럼프의 ‘비밀병기’인 이방카도 유대인으로 분류한다. 이방카는 남편을 따라 유대교를 믿고 있으며 쿠슈너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3월 미국 최대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 참석해 “이방카가 곧 유대인 아기를 낳을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재무·상무장관도 유대인 유력

전 골드만삭스 임원으로 트럼프 대선캠프에서 재무 총책임을 맡은 스티븐 므누친도 유대인이다. 미국인은 그의 성을 므누친으로 부르지만 유대인이기 때문에 메누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므누친은 트럼프와 15년간 우정을 쌓아왔다. 대선 기간에 10억달러 이상 기부금을 모금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부동산재벌 트럼프가 금융인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므누친만은 예외라며 재무장관 가능성을 거듭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는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제프 세션스 앨라배마 상원의원의 공보국장 출신으로 인수위 국내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밀러는 스스로를 실용적인 유대인이라며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는 트럼프 대선 연설의 초안 작성을 담당해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고 유권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루이스 아이젠버그 공화당 전국위원회 금융위원장도 트럼프 정부의 핵심 유대인으로 활동할 전망이다. 그래나이트캐피털인터내셔널 대표인 아이젠버그는 상무장관 기용설이 돌고 있다. 그는 공화당 내 유대인연합 소속으로 트럼프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므누친과 함께 선거기금 마련에 매진했다.

AIPAC의 서부지역 정치담당 국장 출신인 마이클 글래스너는 트럼프 캠프에서 전국정치담당 국장으로 일한 유대인이다. 보리스 엡슈타인은 공화당 정치전략가로 트럼프 대선캠프를 대신해 TV토론회에 100회 이상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폴리티코는 그의 내무장관 발탁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트럼프와 19년간 함께해온 정통 유대교인 제이슨 그린블랫은 이스라엘 담당 보좌관이 유력하다. 파산 전문 변호사로 오랫동안 트럼프의 법률대리인을 맡아왔고, 캠프에서 중동문제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프리드먼도 차기 정부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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