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50대 샤빈 핑커는 최근 ING디바은행에 재취업했다. 첫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둔 지 29년 만이다.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뒤 현장에 투입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노동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고령 인구까지 취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세계 각국이 성장 둔화에 따라 치솟는 실업률로 고통받는 가운데 독일은 심각한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 독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2%로 전년(1.7%)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됨에도 지속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성공한 덕이다.
일자리 없어 난리인데…독일은 '구인난'
◆실업률 6%…26년래 최저치

지난달 독일 실업률은 6%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작년 청년 실업률도 7.2%에 머물렀다. 지난 9월 기준 유럽연합(EU) 28개국 평균 실업률은 8.5%다. 올해 고용자 수도 4350만명으로 통독 이후 최대다. 마티아스 마흐니히 독일 경제부 차관은 “독일이 매년 고용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년간 독일에서는 27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그중 3분의 1은 여성, 3분의 1은 비(非)독일인, 3분의 1은 고령층이 가져갔다. 단순히 일자리만 늘어난 게 아니다. FT는 일자리 수 증가와 임금 상승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소비가 늘고 공공재정이 탄탄해졌다고 전했다.

FT는 2003년 시행한 ‘하르츠 개혁’이 노동시장 호황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하르츠 개혁은 중도 좌파 성향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단행한 고용 유연성 등을 담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다. 노동의 질 저하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개혁 후 5년 만에 독일은 60% 중반이던 고용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 여파로 2005년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했다. 개혁의 과실은 이후 정권을 잡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기민당(CDU) 정부가 누리고 있다. 독일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떨어진 국가다.

◆구인난 호소하는 기업들

기업은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독일 기업이 구하지 못한 노동자 수는 69만1000명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7만9000명 늘어난 수치다.

독일 산업의 주축을 이루는 ‘미텔슈탄트’의 구인난이 특히 심하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중소·강소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EY에 따르면 미텔슈탄트들이 꼽은 가장 큰 경영리스크는 인력난이다. 인력 부족으로 기업이 본 손실은 한 해에 460억유로(약 57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독일 레버쿠젠에 있는 한 정보기술(IT)기업은 “IT 보안 같은 전문분야 인력을 구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에 따르면 독일 기업 10곳 중 1곳은 공짜 헬스클럽 이용권이나 교육비 같은 각종 혜택을 제공해 노동자를 유인하고 있다.

FT는 인구 고령화, 적절한 자격을 갖춘 노동자 부족, 잠재적 경기침체 가능성 등을 독일 노동시장의 불안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평균 나이(중위 연령)는 46.2세였다. 세계에서 일본(46.5세) 다음으로 고령화가 심각한 국가다. 이로 인해 노동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독일 싱크탱크 DIW의 마르셀 프라체 대표는 “2019~2020년에 독일의 노동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이 도제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려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최근 40%대에서 50% 정도까지 높아졌다. 마흐니히 차관은 “기술자에게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만큼이나 많은 기회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