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선거 美대선, 전체 득표수 아닌 선거인단 확보수로 당락 결정
해당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면 할당된 선거인단 싹쓸이 '승자독식제'
2000년에도 득표수-선거인단수 엇갈려…"민의 왜곡" 제도개선 목소리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8일(이하 현지시간) 대선에서 선거인단 확보 면에서 압승해 당선됐지만, 전체 득표에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오히려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으로서는 더 많은 민심을 얻었지만 독특한 선거제도 탓에 백악관행을 트럼프에게 내준 셈이다.

9일 오후 3시 현재, 전국 개표율이 92%로 집계된 가운데 트럼프의 득표수는 5천946만여 표(47.5%)로, 클린턴(5천967만여 표·47.7%)보다 약 21만 표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두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CNN 집계 기준)는 트럼프가 290명에 달한 반면 클린턴은 228명에 그쳤다.

트럼프는 당락의 기준인 선거인단 과반(270명)을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득표와 무관하게 후보별 선거인단 확보수로 승패를 가르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8일 치러진 선거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이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선거다.

메인과 네브래스카를 제외하고 워싱턴DC와 나머지 48개 주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뽑는다.

주별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어 이긴 후보가 그 주에 걸린 선거인단을 싹쓸이한다.

대통령 선거인단은 총 538명이며, 선거인단은 인구 비례에 따라 배정되기 때문에 주마다 선거인단 수가 다르다.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내달 19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된다.

즉 유권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더라도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 뒤지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선거인단이 가장 많이 걸린 캘리포니아(55명)와 뉴욕(29명)에서 클린턴에게 밀렸지만, 공화당 텃밭 텍사스(38명)와 경합주 플로리다(29명)·펜실베이니아(20명)·오하이오(18명)를 차지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미 주별 승자가 확정된 만큼 트럼프와 클린턴 후보가 각각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변동이 없지만, 만약 최종 득표수 집계에서도 클린턴이 득표에서 앞선다면 그는 2000년 민주당 앨 고어에 이어 16년 만에 득표에서는 앞서고 선거에서는 패배하는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앨 고어는 전국 득표율에서 48.4%를 얻어, 47.9%를 얻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를 이겼지만,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266대 271로 패했다.

고어는 전국적으로 53만7천여 표 앞섰으나, 승부처인 플로리다 주에서 537표 차이로 지는 바람에 이 주에 걸린 선거인단 25명을 빼앗겨,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는 대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다가 대법원이 재검표를 중단시키자 선거일로부터 5주 뒤인 12월 13일에 패배를 인정했다.

부시와 민주당 후보 존 케리가 맞붙었던 2004년 대선도 자칫하면 결과가 뒤바뀔 뻔했다.

부시가 선거인단 286명을 확보해 케리(252명)에 앞서 승리했다.

하지만 케리가 경합주 오하이오에서 10만 표만 더 얻어 선거인단 20명을 확보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선거인단 간선제는 연방제를 채택하는 미국의 전통을 반영한 제도로 연방헌법 2조1항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간선제가 전체 민의를 왜곡할 수 있어 선거인단 대신 전국 득표 기준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주장도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대선제도 변경론자들은 '다득표자-승자 불일치' 현상과 함께 특정 주에 선거운동이 몰리는 현상을 그 이유로 지목한다.

반면 현행 제도 유지론자들은 현 체계가 각 주 독립성을 강조하는 미국 헌법 취지에 맞다는 논리를 편다.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