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면서 글로벌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작지 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신문은 9일 ‘미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제로 긴급 대담을 벌였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통상 전문가인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김 원장은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소비재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고, 최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에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 내용을 요약한다.
[미국의 선택 트럼프]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트럼프 당선의 의미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준경 원장=경제적 측면에선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 중산층의 고용 문제가 큰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사회적 측면에선 희망을 잃은 미국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봐야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최병일 교수=불평등의 문제를 기존 정치권에 맡겨선 안 되겠다는 소외 계층의 반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신(新)고립주의’ 현상의 연장선상이죠. 지난 30년간 가속화된 세계화 속에서 선진국 저소득층은 소외됐다는 인식이 근간입니다. 이제 세계화로 인한 ‘윈윈’이나 자유주의의 효율성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에 맞닥뜨린 셈입니다.

▷8년 만에 공화당이 재집권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정책 노선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 교수=트럼프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중서부 지역의 저소득층을 껴안았습니다. 이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해외로 나간 기업에 세제상 불이익을 줘 미국 기업의 유턴을 독려하겠다고 했습니다.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인 ‘작은 정부’ ‘대기업 중심의 시장주의’와 배치됩니다.

김 원장=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호무역주의, 반(反)이민주의로 가겠죠.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정책으로 단기부양을 하겠다고 했는데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로 성장을 제약하는 수준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경제 지표가 회복되는 추세인데 트럼프 집권 후에도 순항할 수 있을까요.

사회=정종태 경제부장
사회=정종태 경제부장
김 원장=민주당이 추진한 ‘시장 친화적 구조조정’에 반하는 공약이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현재 2.0%에서 1.0%로 반 토막 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공약을 그대로 추진하면 저성장 기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이 예상됩니까.

김 원장=KDI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트럼프의 급진적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시행되면 2016~2020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0.3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트럼프가 예상보다 완화적 정책을 펴더라도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1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통상 분야 충격이 가장 우려됩니다. 미국이 보호무역의 선봉 역할을 할 텐데요.

최 교수=트럼프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한국 중국 일본에 대해 ‘불공정통상정책’이라고 날을 세웠죠. 철강업종을 시작으로 반덤핑 보조금 공세는 강화될 것입니다. 외환정책에도 무역흑자를 위해 통화가치를 조작한다며 ‘환율조작국 지정’을 내세워 감시를 강화할 겁니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까요.

김 원장=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죠. 중요한 것은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와 소비 위축으로 수입이 줄어든 것이 큰 이유죠. 한국 정부가 이를 잘 설명하고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최 교수=미 워싱턴 정가에서 보호무역주의 공세를 주도하는 의원들은 중서부 제조업자를 대변하는 이들입니다. 아무리 한국이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해도 이들 머릿속에는 ‘그동안 동아시아 국가가 환율을 조작해 재미 봤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환율조작국에 대응하기 위한 새 법안이 분명히 발효될 것입니다. 적극적인 공공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됐습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봅니까.

최 교수=재협상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나올 것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맨 먼저 대(對)중 관계를 손보려 할 것이고, 이민 문제와 맞물려 멕시코와의 관계를 점검할 것으로 봅니다. 한·미 FTA는 세 번째 대상일 텐데요.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한·미 FTA가 ‘잡 킬링 FTA’라고 강조해왔습니다. 물론 트럼프에게도 일방적인 폐기 선언은 부담스러울 겁니다. FTA 폐기라는 위협 카드를 쓰면서 상당 부분을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수정하려고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부정적인데요.

최 교수=TPP 역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레임덕에 맞닥뜨린 버락 오바마 정부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억지로 TPP를 끌고 갈 수도 있죠. 하지만 표심으로 심판을 받은 상황에서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할 경우 한국에도 큰 부담이 될 텐데요.

김 원장=덤핑 수출 때문에 중국과 미국의 마찰은 더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이 과잉설비로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미국 보호무역으로 투자를 더 줄이면 한국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대중 수출의 73%가 중국 투자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제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부실이 드러난 조선업, 철강 등에 대한 구조조정이 좀 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 기회 요인이 되는 측면은 없을까요.

최 교수=공화당은 전통적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반대해왔습니다. 그동안 의욕적으로 파리협정을 추진한 미국이 시큰둥하게 돌아서면 파리 협정은 추진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죠. 한국에는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김 원장=제조업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면 중국은 성장을 위해 내수 진작 정책을 더 강하게 펼 것입니다. 중국 소비재 시장이 늘면 한국에는 기회입니다. 한류 효과나 한국 상품에 대한 신뢰도를 이용해 중국 소비재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합니다.

최 교수=트럼프는 기업인 출신답게 ‘원칙’보다 ‘실리’를 축으로 모든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에 무역규제 정책을 펴더라도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 선택적으로 적극 수용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통상 정책 방향도 새로 짜야 합니다.

정리=황정수/심성미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