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이메일 재수사 발표·해킹 메일 폭로로 막바지 선거판 뒤흔들어

8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에서 대이변을 일으키며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를 거둔 데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제임스 코미 국장과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미 국장과 어산지는 모두 이메일을 고리로 민주당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의 약점을 건드려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산지는 클린턴 측 인사의 해킹 이메일을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줄기차게 공개하며 클린턴을 괴롭혔다.

위키리크스는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있던 2009∼2013년 주고받은 사설 이메일에서 문건 3만여 건을 확보해 대선 기간에 순차적으로 폭로했다.

클린턴의 가족재단 '클린턴 재단'과 국무부 사이 유착 의혹과 외국인 기부금의 부적절 수령 논란, 월가의 초고액 강연료 등이 이메일 폭로로 알려지면서 클린턴은 신뢰성 면에서 타격을 입었다.

어산지는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는 시점에선 존 포데스타 클린턴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의 해킹 이메일을 공개했다.

여기엔 클린턴 캠프와 미국 언론 간 유착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클린턴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어산지에게 '잽'을 수차례 얻어맞은 클린턴에게 코미 국장은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란 결정타를 날렸다.

코미 국장은 대선을 불과 11일 남겨둔 지난달 28일 의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사설 이메일로 공무를 본 '이메일 스캔들'의 재수사 방침을 밝혔다.

클린턴의 최측근 후마 애버딘의 남편 노트북에서 발견된 이메일이 재수사 결정의 계기를 제공했다.

결국 선거 개입 논란 속에 재수사 발표 9일 만에 코미 국장은 지난 8월 수사 때처럼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무혐의 처분이 나긴 했지만 재수사 착수 발표로 클린턴의 신뢰도는 다시 훼손됐고 지지율은 곤두박질했다.

클린턴의 불운은 당연히 트럼프에겐 기회로 다가갔다.

이메일 재수사 착수를 발표할 즈음은 클린턴의 지지율이 트럼프에 큰 폭으로 앞서 사실상 대선이 끝났다는 전망까지 나오던 시기였다.

코미 국장의 폭탄선언은 역대급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10월의 이변)로 불리며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줬다.

음담패설 녹음파일 폭로 파문과 여성들의 성추행 피해 증언들이 잇따르면서 지지율 추락을 맛본 트럼프로선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트럼프는 대선일 직전 대부분의 지지율 조사에서 클린턴에 바짝 따라붙었고 결국 대선 당일 트럼프 지지 의사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샤이 트럼프'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머줬다.

코미 국장과 어산지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드는 데 주역으로 떠올랐지만 대선 개입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어산지는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성명을 내고 줄기차게 민주당 관련 문건만을 폭로해 편파성 지적을 받은 점을 해명했다.

그는 "오늘까지도 트럼프 선거캠프에 대한 제보가 없었다"며 대선을 흔들 저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때 공화당원이었던 코미 국장은 지난 7일 친(親) 트럼프 인사들이 여럿 포함된 비영리단체 연방마약단속관재단의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돼 논란의 중심에 다시 섰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