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오랜 동맹 관계가 고비를 맞게 됐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동맹국이 미국에 의무를 다할 때만 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해왔다. 한국 일본뿐 아니라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나라가 미국에 의무를 다했는지 검토한 뒤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회원국이 공격받았을 때 자동 군사 개입을 보장한 NATO 규약 5항을 무시하고 동맹을 내버려두겠다는 뜻이다. 그는 또 “NATO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NATO는 러시아를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과 이민자 유입을 막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동맹국들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러시아의 위협이 가중되는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라며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은 트럼프 당선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증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 동맹이 흔들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눈엣가시였던 NATO가 힘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푸틴에 호감을 표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주장하고 있어 힘을 합쳐 러시아를 견제하자는 유럽의 입장과 배치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 고려하는 기업가적 마인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EU) 10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85%는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