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경기 악화되겠지만 가계부채 등 저금리 부작용 의식

8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함에 따라 미국과 한국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의 통화정책을 한 방향으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국제금융시장에 발생한 충격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어렵게 하던 요인이 연기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여지가 생긴 셈이지만, 저금리 장기화로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이어서 한은 금통위원들의 계산이 더욱 복잡해졌다.

한국은행은 오는 11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 조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9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달 금통위에선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이 커지고 이를 우려한 미 연준이 연내 미국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한다면 한은이 국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 생산과 투자, 수출 부진에다 청탁금지법,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 및 현대차 파업 등의 여파로 국내 경기가 얼어붙는 상황이다.

일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4분기의 전 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이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연기를 틈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함으로써 꺼져가는 경기회복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그동안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른바 '경기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한은이 내년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게 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트럼프 당선 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져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내년 국내 경기가 더욱 악화된다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정치적으로 금리를 낮게 유지해왔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그를 의장으로 재지명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트럼프 당선 후 연준 의장이 교체된다면 미국 연준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도 확대될 수 있다.

다만 금융시장에선 트럼프가 당선 후 이런 혼란을 자초하긴 쉽지 않으며 연준의 독립성이나 지금까지의 미국 경기 흐름을 고려하면 '점진적인 금리 인상'이라는 기존 연준의 스탠스가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내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한은의 통화정책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뿐 아니라 가계부채 등 국내 경기상황을 우선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상황 계산이 간단치 않다.

가계부채는 올 상반기에만 54조원이 급증해 지난 6월 말 현재 1천257조원을 넘어섰고 부동산 경기 둔화 시 금융시장에 충격을 몰고 올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한은 금통위원들은 최근 금통위 회의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등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급증 상황을 우려해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은 기준금리 결정 시 국내 경기상황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가계부채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일단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내년 경기상황이 어려워지면 추가 인하 가능성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