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유리천장' 깨는 주인공 여부에 전 세계 이목 집중
1872년 여성의 첫 대권도전 144년만에 '꿈' 이뤄질지 주목
베테랑 정치인…변호사→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


미국의 4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29일(현지시간)로 꼭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 탄생 가능성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와의 지지율 격차를 10%포인트 안팎까지 벌리며 막판 굳히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9부 능선을 넘어 정상을 밟기 직전의 상황이다.

다만 클린턴의 최대 약점인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재수사 방침이 막판 변수로 새롭게 부상한 게 막판 최대 변수다.

클린턴이 제2의 이메일 스캔들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우세한 흐름을 끝까지 지켜 내달 8일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 지으면 첫 여성대통령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240년 미국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큰 이정표를 남기는 것이다.

지난 7월 미국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선후보가 됨으로써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 즉 '유리천장'을 깬 클린턴이 열흘 후 대선 승리를 통해 최후의 유리 천장까지도 깨는 주인공이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클린턴도 이 같은 상징성을 감안해 천장이 실제로 유리로 돼 있는 뉴욕시 맨해튼의 '재비츠 컨벤션 센터'에서 개표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최후의 유리천장 깨는 힐러리…여성 첫 미국 대권도전 144년 만에 '꿈' 실현되나

8년 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첫 여성대통령의 꿈은 말 그대로 실현하기 힘든 먼 꿈이었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흑인 남성보다 한참 뒤늦게 인정된 것과 무관치 않다.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865년이지만,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이보다 55년 늦은 1920년대의 일이다.

여성에 대한 이런 사회적 차별 때문에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포한 미국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여성대통령은 물론 여성 부통령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필두로 228년간 44대에 걸쳐 모두 남성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양대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여성이 후보로 지명된 역사도 없다.

제럴린 페라로(1984년·민주)와 세라 페일린(2008년·공화)이 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이 전부다.

여성이 대권 후보로 나선 것은 빅토리아 우드헐이 1872년 34세의 나이에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의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 처음이다.

이후 민주·공화의 양당에서 여성의 대권 도전이 잇따랐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다.

클린턴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우드헐이 1872년 첫 출사표를 던진 지 144년 만에 첫 여성대통령의 꿈이 이뤄진다.

◇학창시절부터 정치에 뜻…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으로 내공 쌓아

최근 69세가 된 클린턴은 어릴 적부터 정치의 꿈을 키워 왔으며, 신념과 열정을 보유한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다.

웰즐리대 행정대학 학생회장 시절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대학 졸업연설을 하면서 동기 여학생들에게 "아직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도력과 힘을 발휘할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해 일찌감치 '미래 첫 여성대통령'에 대한 꿈을 내비쳤다.

클린턴은 웰즐리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뒤 변호사로 출발해 퍼스트레이디(대통령 부인),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치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내공을 쌓았다.

8년 전 대권에 처음 도전했다가 지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재수 끝에 9부 능선을 넘어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클린턴은 1947년 10월 26일 미국 일리노이 주(州) 시카고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영국 웨일스 혈통인 아버지 휴 앨즈워스 로댐은 시카고 시내에서 작은 섬유업체를 운영했고 어머니인 도로시 엠바 하월 로댐은 전업주부였다.

도로시의 모친, 즉 클린턴 전 장관의 외할머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인디언의 혼혈이다.

클린턴이 3살이 되던 해에 시카고 교외의 파크리지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두 명의 남동생 휴이 로댐, 토니 로댐과 함께 자랐다.

기독교를 믿는 보수적 가정에서 자란 클린턴은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고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6세 때 고교생으로서 '신보수주의 운동'의 기수였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베리 골드워터의 선거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미 전역에 불어닥친 민권운동 열풍, 특히 1968년의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클린턴의 이념 성향이 바뀌는 과정은 미 CNN 방송이 지난달 방영한 '힐러리 클린턴 다큐멘터리'에도 잘 드러나 있다.

웰즐리대 졸업 후 1969년 진학한 예일대 로스쿨에서 한 살 많은 아칸소 주 출신 법학도인 지금의 남편 빌을 만났고, 이것이 클린턴으로서는 향후 먼 미래에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75년 10월 빌과 결혼해 아칸소 주 리틀 록에 보금자리를 꾸민 클린턴은 남편이 아칸소 주 법무장관을 거쳐 1978년 주지사에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 날개를 펴는 동안 변호사로 명성을 쌓으며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88∼1991년에는 '영향력 있는 100대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이 대선과 재선에서 승리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클린턴은 '조용한 내조'에 방점을 뒀던 기존의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힐러리케어'(Hillarycare)로 불리는 보건개혁을 추진하는 등 '일하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남편의 첫 대통령 임기 때 아칸소 주 화이트워터 지역 부동산 개발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화이트워터 사건', 또 두 번째 임기 때 터진 '르윈스키 스캔들'과 그에 따른 탄핵 파문은 클린턴에게 커다란 시련이었다.

클린턴은 CNN 다큐멘터리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을 거론하며 "당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시련은 클린턴을 정치인으로 변모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 무렵 클린턴은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라는 민주당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2001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8년간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2008년 첫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검은 돌풍'을 앞세운 정치 신예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한 뒤 오바마 1기 행정부에 합류해 4년간 국무장관직을 지내면서 대선주자로서의 깊은 내공을 쌓았다.

가족관계는 단출한 편이다.

결혼 4년 4개월 만인 1980년 2월 외동딸 딸 첼시를 낳았고, 첼시가 2010년 러시아계와 유대계 혈통을 가진 미국인 마크 메즈빈스키와 결혼한 뒤 2014년 첫 딸을 출산해 클린턴 전 장관 부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

빌은 1946년 8월 아칸소 주의 호프에서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3세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기 전 외판원이던 아버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주니어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후 어머니 버지니아 델 캐시디가 로저 클린턴과 재혼하면서 계부의 성을 따라 개명했다.

빌의 이복동생으로는 로저 주니어(1956년생)가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si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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