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추모 열기 속에 상복(喪服)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거나, 왕실을 모독했다는 트집을 잡아 집단으로 응징하려는 행위가 잇따르자 자성론이 일고 있다.

1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3일 국왕 서거 이후 검은색 또는 흰색의 상복을 갖춰 입지 않은 사람들이 비난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는 상황이 줄을 잇고 있다.

붉은색 계열의 셔츠를 입고 식당에서 밥을 먹던 한 남성은 네티즌에게 사진이 찍혀 "도대체 당신의 심장은 뭘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이런 밝은색 옷을 입고 집을 나설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이 남성은 국왕 애도 행사장에서 하루를 보낸 뒤 간단히 식사하러 집 근처 식당에 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국의 유명 만화가는 검은색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알렸다.

그는 토요일 저녁에 식당에 회색 줄무늬 셔츠 차림으로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면서 "사악한 인간! 태국 사람도 아니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초록색 회사 유니폼을 입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한 남성은 신호 대기 중에 트럭 운전자의 질책을 받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유니폼 안에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를 꺼내 보여줬다고 털어놓았다.

푸껫과 꼬사무이 등 남부지역에서는 왕가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주민 수백 명이 집단으로 사과를 요구하며 위협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특히 지난 16일에는 남부 수랏타니주(州) 꼬사무이에서는 왕가모독 혐의로 기소된 여성을 끌어내 공개 사과를 시키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이 여성은 경찰서 앞마당에 끌려 나와 푸미폰 국왕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왕 서거를 빌미로 한 이런 맹목적인 비난과 폭력적인 집단행동이 잇따르자 태국 정부는 국민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태국 정부 대변인은 반드시 검은색과 흰색 상복을 반드시 입지 않아도 되며 검은색 리본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말했다.

또 현지 언론들도 사설과 칼럼을 통해 타인에게 정형화한 추모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의적으로 왕실모독을 해석하고 관련자를 응징하려는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방콕포스트는 18일 자 사설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했든 집단행동이 설 자리는 없다.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것은 경찰"이라며 "지금은 가장 어려운 시기인 만큼, 태국인은 헐뜯고 협박하기보다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일간 '더 네이션'도 사설을 통해 '연민과 너그러움을 가진 국민은 평화와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푸미폰 국왕의 생전 발언을 인용하면서 "검은색 옷을 놓고 서로 다투는 모습은 분명 서거한 국왕을 추억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잉락 친나왓 정부에서 총리실장을 지낸 수라난드 웨차치와도 기고문에서 "왕실모독 혐의자에게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서거한 국왕을 기리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성을 찾고 국왕이 남긴 유훈을 받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썼다.

또 일부 언론은 2천여명의 공무원들이 도열해 검은색 리본 형태를 만든 지자체 사례를 소개하거나, 문신이나 그림 등으로 국왕의 유훈을 되새기는 비폭력적인 추모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