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떨어져 생계 막막하고 안전까지 위협
"웃기는 게 일이라 문제제기도 못한다" 근심 토로

광대 분장을 한 사람들이 납치와 살인 행각을 벌인다는 '광대 괴담'이 퍼지면서 직업광대들의 생계와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광대 괴담이 캐나다, 영국, 호주 등지까지 확산하자 일감이 크게 줄어든 직업 피에로들이 생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퍼지 더 크라운'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미국 뉴저지 출신 여성광대는 "생계를 위해 34년 동안 직업광대로 일했지만 (광대 괴담이) 내 일을 망치고 있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찾는) 전화를 한 통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광대 괴담은 대중의 과잉반응으로 이어지면서 직업광대들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괴담이 시작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그린빌에서 주민들이 광대가 출몰한다는 숲을 향해 총을 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나쁜 광대로 오인돼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광대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퍼지 더 크라운'은 "내 영역을 벗어나야 할 때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며 "지금까지 경찰이 단속하려고 내 차를 길가에 대라고 한 적은 없지만 나는 분명히 광대 분장을 하고 운전을 한다.모든 사람이 현재 경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존재하는 광대들이 직장 안전 문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여겨져 이들이 행동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웃기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인식도 있다.

국제미국광대협회도 이 문제에 대해 답변을 꺼리면서도 "우리는 몇 번이나 설명하려고 했으나 잘 된 적이 없었다"며 "우리를 더 나쁘고, 바보같이 만들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에 광대 모양을 한 악마 캐릭터를 만들어낸 '스릴러 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이 트위터에 "광대 공포를 진정시킬 시점이다. 광대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고, 사람들을 웃게 해준다"는 글을 올리며 진화에 나섰지만,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광대들이 자체적으로 조처를 취하고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뜬 '광대 생명도 소중하다'(Clown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유령의 집에서 시간제 광대로 일하는 조던 존슨은 자신의 직업이 묘사되는 방식에 대해 화가 난다며 페이스북에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미 애리조나 출신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니키 신도 "광대들이 정신병자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오는 15일 '광대 생명도 소중하다' 평화 행진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활동가들이 이를 자신들의 슬로건을 조롱하는 도용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진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은 "이름과 관련해 아무 의도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려고 했다"며 "그들을 조롱하거나 그들 활동에 둔감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나쁜 광대들'의 작가 벤 래드퍼드는 이러한 광대 공포는 사회 불안이 내재하는 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81년에도 광대 분장을 한 남자가 학교와 공원에서 아이들을 유인한다는 괴담이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퍼진 적이 있다며 사회불안이 높아지는 시기일수록 특히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편견'(stranger danger)이 확산할수록 이러한 광대 괴담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논쟁적인 대선, 테러 위협, 총기 난사 등 현재의 사회불안과 함께 광대 공포가 재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래드퍼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괴담이 전과 다르게 대규모로 확산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광대에 대한 두려움은 광대가 주는 기쁨과 마찬가지로 항상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