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하트 교수(왼쪽). 벵트 홀름스트룀 교수
올리버 하트 교수(왼쪽). 벵트 홀름스트룀 교수
‘계약이란 틀로 경제 행위를 분석하면 사회의 효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10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68·영국)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67·핀란드)는 계약이론의 대가다.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도덕적 해이’부터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추긴 ‘정보의 불균형’까지 이들은 모두 계약의 문제로 봤다. 산업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 도입 등을 놓고 고민하는 한국 사회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준다는 평가다.

◆도덕적 해이도 계약의 문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대 경제는 수많은 계약으로 이뤄져 있다”며 “두 교수의 계약이론이 최고경영자(CEO)의 성과연동형 보수, 보험에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부담분,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분석하는 틀로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떤 계약에서 경제주체 간 의사 결정, 그 효과와 부작용 등을 분석하는 것이 계약이론이다. 회사의 주주가 CEO에게 경영을 위임하거나, 회사가 사원을 고용하는 등 수많은 행위가 계약으로 이뤄진다. 왕규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홀름스트룀에서 계약이론이 출발했다면 하트는 발전시킨 인물”이라며 “모두 상을 받을 만한 학자들”이라고 설명했다.

도덕적 해이도 계약이란 틀로 보면 규명하기 쉬워진다. 예컨대 주주로부터 경영 권한을 위임받은 경영자(대리인)가 주주 이익 대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다. 경영자가 자신의 실적을 부풀리거나 과다한 성과급을 받으면 기업 가치가 하락한다. 주주나 오너의 이해, 경영자의 이해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대리인 문제’다. 막대한 분식회계로 주가를 끌어내리고 투자자 손실을 안긴 대우조선해양이 단적인 사례다.

◆20쪽짜리 논문이 바이블로

홀름스트룀 교수는 이 같은 ‘주인-대리인 모델’을 통해 최적의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김선구 서울대 교수는 “1979년에 홀름스트룀 교수가 발표한 ‘도덕적 해이와 관찰 가능성’ 논문은 20쪽에 불과하지만 8000번 이상 인용되며 계약이론의 바이블(성서)이 됐다”며 “대학원에서 계약이론을 강의할 때 한 학기의 3분의 1을 이 논문 연구에 쓸 정도”라고 말했다.

홀름스트룀은 성과 지표로 대리인 문제를 푸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근로자의 보상, 무임승차하는 팀원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수단을 줬다”며 “성과급은 유용한 제도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점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트 교수는 일부 계약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불완전 계약’을 연구했다. 계약 당시 명시하지 못한 만일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다. 그는 정의나 관행 대신 제대로 된 계약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당사자들이 계약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한다면 도덕적 해이와 같은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도 이들의 시각에선 계약의 문제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진 이들의 불균형, 즉 정보 비대칭이 금융위기를 부른다는 설명이다. 금융회사가 파산에 몰릴 때 정부가 얼마나 지원해야 할 것인지의 도덕적 판단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트 교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 금리를 이용해 ‘대형 금융회사(SIFI)’의 부실 징후를 파악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앵거스 디턴에 이어 미시경제학자들이 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며 “기업을 경제주체로 보고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도 큰 성과를 남겼다”고 말했다.

김유미/심성미/김주완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