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선포→강제 대피령 연쇄 발동해 인명 피해 가능성 줄여
'카트리나'·'아이티' 학습 효과…연방·4개 州 정부 '호흡 척척'
기상 당국 정확한 예측도 '한몫'…재난 대처 부실한 우리에 시사점


지난 닷새간 미국 동남부 지역을 공포로 몰아간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 사태가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남기고 8일 오후(현지시간)를 기점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7일 오전 미국 플로리다 주 연안에 상륙한 매슈는 강풍과 폭우를 앞세워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동남부 4개 주에 적지 않은 손실을 남겼다.

4급 규모에서 1급 규모로 약해진 매슈는 9일 오전께 대서양으로 물러가 소멸할 것으로 기상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대서양 쪽 기압과 바람의 영향으로 다시 U턴해 플로리다 주나 바하마 제도에 2차 습격을 하더라도 위력은 현저히 떨어진 상태일 것이라는 게 기상 당국의 전망이다.

8일 현재 매슈로 숨진 희생자는 10명이라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홍수로 익사한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강풍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숨진 노약자들이다.

복구가 시작돼야 정확한 인명·재산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우려보다 훨씬 피해가 작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피해가 작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매슈의 본토 상륙이 지연된 데 있다.

최대 중심 풍속 시속 220㎞의 강풍을 앞세운 매슈가 4급 위력을 지닌 채 플로리다 주에 본토에 상륙했다면 엄청난 피해를 유발했을 테지만, 매슈는 대서양에 머물다가 4급에서 2급으로, 2급에서 다시 1급으로 약해진 8일 오전에서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매클렌빌에 상륙했다.

대서양 바닷물의 내륙 침수와 불어난 강물의 범람에 따른 홍수, 강풍에 힘없이 쓰러진 나무와 온갖 잔해물 더미 등 허리케인이 몰고 온 일반적인 장면이 연출됐을 뿐 가옥을 포함한 대규모 건물 파손, 도로 유실, 교각 붕괴와 같은 큰 재산 피해 상황은 보고되지 않았다.

매슈의 상륙을 앞두고 4개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이다.

체계적이고 철저한 대비로 매슈 피해를 최소화한 미국 당국의 준비 과정은 재난 대처에 부실하다는 비판에 휩싸인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 3일부터 연쇄 비상사태 선포…"매슈가 당신을 해칠 것" 강력한 경고 = 매슈가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 아이티를 강타하기 하루 전인 3일 오후 팻 매크로이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먼저 주 내 66개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곧바로 매슈를 가장 먼저 맞닥뜨릴 플로리다 주의 릭 스콧 주지사도 주 내 전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상 예보를 볼 때 매슈는 아이티를 지나 쿠바, 바하마 제도를 거쳐 미국 동부 해안에 6일 오후 늦게 또는 7일 오전께나 당도할 예정이었음에도 서둘러 움직인 셈이다.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괴물'같은 매슈가 북상 채비를 갖추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조지아 주도 4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4개 주 주지사들은 매슈 예상 상륙 지점에 거주하는 해안가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지 말고 즉시 탈출하라는 권고에 앞장섰다.

5일 내려진 주지사의 강제 소개령에 따라 플로리다 주민 150만 명,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 50만 명 등 총 200만 명이 피난길에 나섰다.

스콧 주지사가 주민들에게 최소 사흘 치 식량과 물을 비축하라고 권유하자 플로리다 주 일부 지역 상점에서는 생필품이 동나기도 했다.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선 주민들로 주간고속도로는 일찌감치 주차장으로 변하고, 주유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강제 대피령으로 피난을 떠나는 주민들을 위해 버스 300대 이상을 수송에 투입했다.

그래도 대피하지 않는 주민들을 향해 스콧 주지사는 강력한 표현을 썼다.

6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허리케인은 당신을 해칠 것(This storm will kill you)"이라는 말로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플로리다 주와 조지아 주는 매슈 상륙을 코앞에 둔 5∼6일 수천 명의 주 방위군을 재난 방지에 투입해 '준전시 상황'으로 만반의 대비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기민하게 결단을 내렸다.

헤아릴 수 없는 타격을 우려해 미리 연방 차원의 비상사태를 선포해달라던 4개 주 주지사의 청원을 들어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6일 플로리다 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조지아 주 순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7일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비상사태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국토안보부와 연방 재난관리청(FEMA)의 공조로 구호 인력·물자 지원이 각 주에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5일 플로리다 주 방문을 취소하고 FEMA를 방문해 대책을 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파괴된 가옥이나 건물은 복구할 수 있지만, 목숨을 잃으면 이를 되살릴 순 없다"면서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허리케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주민들에게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시시각각 상황을 보고받은 뒤 4개 주 주지사와 전화 통화로 연방 차원의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플로리다 주로 향하는 항공편의 운항이 전면 취소됐고, 인구 밀집구역인 공항과 테마파크는 잠정적으로 문을 닫아 인명 피해 소지를 최대한 줄였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 학습효과…아이티 참상 소식도 경각심 고취에 일조 = 민주당(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4개 주지사)으로 정파는 다르지만, 연방 정부와 4개 주 정부가 적시에 합심한 원동력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학습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2005년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만든 카트리나 사태 때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예측 가능한 허리케인에 늑장 대처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뉴올리언스 인근 둑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보고를 국토안보부, 백악관은 물론 주 정부까지 무시한 바람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에도 백악관의 초기 사태 오판과 구호물자 수송 지연 등으로 부시 행정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카트리나 참사 이후 지방 정부에 집중된 재난 대응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국토안보부와 FEMA 등 연방 정부 기관의 기능을 강화해 중앙과 지방 정부가 통합적인 대응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통령 정책 지침 8호'를 신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미국 동부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 때에도 이 지침에 따라 재난 대책을 진두지휘했다.

애초 3명에 불과하던 카리브 해 최빈국 아이티의 희생자 수가 날이 갈수록 눈덩이로 불고 있다는 소식도 미국민들의 경계심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선진국 미국과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사회안전망을 비교할 순 없지만, 매슈가 아이티를 폐허로 만들고 희생자도 눈덩이로 불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민들의 대비 심리를 강하게 부추긴 것으로 추정된다.

◇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의 정확한 진행 방향 예측 = AP 통신은 매슈가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한 뒤 기상 전문가들의 예측 방향에 따라 움직였다며 정확한 예보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는 기상 위성 레이더에서 찍은 매슈의 사진을 판독해 진행 방향과 위력 등을 트위터와 언론을 통해 즉각 알려 주민들이 대비 정보를 얻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미국 기상청의 산하 기구로 플로리다 주에 본부를 둔 국립허리케인센터는 1965년 창설됐다.

북대서양과 북태평양 동쪽에서 발생하는 열대 사이클론 등을 지속해서 추적, 관찰, 연구하는 허리케인 특별 전담반을 필두로 열대 기후 분석·예보부서, 폭풍해일 전담반 등으로 이뤄졌다.

국립허리케인센터는 미국 해양대기관리국(NOAA), 기상청과 함께 긴밀한 협조로 허리케인 발생 시 긴급 대응팀과 정보를 주고받는 연락 기관의 노릇도 한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