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하루전까지 오리무중인 노벨경제학상 후보, '서프라이즈'가 나올까
“올해는 루머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발표가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수상 분야나 후보자의 윤곽은 커녕 루머조차 나오지 않으면서 학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통상 숏리스트로 불리는 압축된 후보자 명단이 발표를 임박해 흘러나오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지만 올해는 철저히 비밀에 붙혀지면서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2001년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에는 수상자를 짐작할 단서조차 돌지 않는다”고 전했다. 2013년 ‘독과점 시장에 대한 효율적 규제 연구’로 상을 받은 유진 파머도 “수상 자격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며 “예측 자체가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내재적 성장이론으로 노벨상 단골후보로 거론돼온 폴 로머 뉴욕대(NYU) 교수(사진 가운데)가 지난 6일 학교측의 실수로 자신의 수상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홈페이지를 통해 유출되는 ‘사고’ 벌어졌다. 뉴욕대가 “10일 오전 11시 스턴 경영대학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교수의 기자회견을 연다”고 잘못 공지한 것.

지난달부터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활동중인 로머는 이튿날 자신의 블로그에서 노벨상을 둘러싼 각 대학의 신경전이 말도 안되는 해프닝을 만들어 냈다며 자신의 내정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지난 20년간 대학의 PR담당자가 10월만 되면 미리 흥분해 자신이 속한 대학의 교수가 노벨상을 받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비한 준비를 한다고 지적한 것. 마치 당첨금 1억달러의 복권에 당첨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하지만 매번 이들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호들갑을 떤다고 비꼬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매년초부터 수백명의 후보를 추천받아 자체 검증을 한 뒤 3배수의 숏리스트를 만든다.

WSJ와 영국 일간지 가디언, 톰슨로이터가 나름 분석해 내놓은 1순위 후보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왼쪽 사진)다. 지난해에도 유력후보로 거론된 블량샤르는 톰슨 로이터의 전문가 설문에서도 1순위 후보로 뽑혔다.

WSJ는 노벨상위원회가 글로벌 경기침체와 무역 감소에 대한 시사점을 주려고 한다며 자유무역의 강력한 지지자인 자그디쉬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의 수상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올 연말 발효를 앞둔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테마로 잡는다면 환경과학를 경제적 시각에서 분석한 윌리엄 노르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불평등에 주목한다면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와 더불어 안토니 앳킨스 옥스포드대 교수가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레이건 행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석좌교수 역시 세제와 연기금 등 재정학 분야의 최권위자로 노벨상을 받기에 손색이 없다. 생산성 감소와 저성장을 테마로 잡는다면 94세의 윌리엄 보몰 뉴욕대 교수와 데일 요겐슨 하버드대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톰슨로이터가 논문인용 횟수를 분석해서 뽑은 숏리스트에는 블랑샤르 교수에 이어 에드워드 레이지어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2순위로 올라있다. 저명한 노동경제학자이자 인사경제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수상자로 결정되면 구체적인 ‘업적’보다는 경제학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만약 노벨상 위원회가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면 마크 멜리츠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오른쪽 사진)가 유력하다. 톰슨로이터 조사에서 세번째로 이름을 올린 멜리츠 교수는 ‘확고한 이질성 및 국제 무역에 대한 선도적 연구’에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무역의 기초이론으로 통용되는 ‘비교우위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제무역을 다국적 기업 내부의 글로벌 생산구조에 집중해 기업 이질성(Firm heterogeneity) 측면에서 분석했다.

학계에서는 “멜리츠 교수가 후보에 언급된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노벨상이 모두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수여된 점을 감안하면 1968년 생으로 올해 48세에 불과한 멜리츠가 수상자로 선정된다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노벨상 위원회는 매번 발표 직전에 수상자에 직접 전화를 걸어 통보를 해준다. 통화는 “축하합니다”가 아니라 “우선 이것이 장난 전화가 아니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로 시작된다.

올해 발표시간은 10일 오전 11시45분(스웨덴, 중부유럽 시간 기준), 미 동부시간으로는 10일 새벽 5시45분이다. 위에 거론된 후보중 미국에 있는 학자들은, 로머 교수를 포함해, 모두 새벽잠을 설칠 것으로 보인다.

뉴욕=이심기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