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난민 할당제에 대한 찬반을 놓고 헝가리 정부가 시행한 국민투표가 투표율 50%를 밑돌아 무효가 됐다. 이른바 ‘헝가리판 브렉시트(EU 탈퇴)’로 관심을 끌던 국민투표가 무산되면서 난민을 반대해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사진)는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2일(현지시간) 헝가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투표율은 43.91%로 집계됐다. 헝가리에서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과반이어야 성립된다. 유권자가 가장 많은 수도 부다페스트의 투표율은 39.43%로 20개 시(市)와 카운티 중 가장 낮았다.

EU는 지난해 9월부터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으로 들어온 16만명의 난민을 각 회원국에 분산 수용하는 난민 할당제를 추진해왔다. 헝가리가 수용해야 할 난민은 1294명이다. 극우주의 노선을 걷는 오르반 총리는 “국회 동의 없이 EU의 난민 할당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민투표에 부쳤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오르반 총리가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제1야당인 민주연합 대표 페렌치 듀르차니 전 총리는 “낮은 투표율은 대다수의 국민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민 문제가 국경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헝가리 국민투표가 무산되면서 브렉시트와 난민 할당제 등으로 회원국 간 갈등이 커지고 있던 EU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헝가리와 함께 비셰그라드(중부유럽 4개국) 그룹에 속한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에서도 난민 할당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헝가리의 국민투표는 위험한 게임”이라며 “이민 문제에 협력하길 거부하는 회원국에는 경제적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헝가리 정부는 국민투표 무산에도 정치적 승리를 선언하며 기존의 반(反)난민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의 98%가 난민을 반대한다는 쪽에 표를 던졌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BBC는 오르반 총리에게 투표 결과는 ‘참패’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승리’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