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50% 미달…보이콧 운동에 EU와 갈등 확대 우려 작용한 듯
오르반 총리 '승리' 선언…야당은 총리 퇴진 요구

유럽연합(EU)의 난민할당제를 국회 동의 없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안건을 놓고 추진한 헝가리 국민투표가 50%의 투표율을 밑돌아 무효가 됐다.

3일(현지시간) 헝가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른 국민투표 투표율은 43.91%로 집계됐다.

가장 유권자가 많은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투표율이 39.43%로 20개 시, 카운티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헝가리 국민투표는 투표율 50%에서 한 표를 넘어야 성립된다.

투표는 무효가 됐지만 투표한 유권자의 98.33%에 이르는 328만2천7천 명이 난민할당제에 반대표를 던졌다.

EU 안에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는 1.67%인 5만5천758명에 그쳤다.

반대표는 투표소를 찾지 않은 전체 유권자까지 포함했을 때 37.76%였다.

난민 문제를 국내 정치 문제로 끌어들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투표 무산으로 정치적인 부담을 안게 됐지만 투표 결과를 놓고 "승리했다"고 선언하면서 EU가 난민할당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투표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는 오르반 총리가 투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지난해 9월 독일의 주도로 그리스, 이탈리아에 들어온 난민 16만 명을 회원국에 할당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의 난민은 최초 입국한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는 더블린 조약이 1997년 발효됐지만, EU는 그리스, 이탈리아의 난민 사태를 더블린 조약으로 풀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할당제를 논의했다.

헝가리와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올 7월 국민투표 카드를 꺼냈다.

그는 2008년 집권 연립 여당이 추진한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국민투표를 성사시켜 연립 내각을 무너뜨린 경험이 있다.

'빅테이터'(Victor라는 이름과 독재자라는 뜻의 dictator를 결합한 단어)라는 별명이 붙은 오르반 총리는 야당, 시민단체는 물론 EU 다른 회원국의 비판도 무시하며 인종차별 논란까지 일으킨 투표 캠페인을 주도했다.

전국 2만여 개의 광고물 부착 장소 중 6천여 개를 정부가 선점한 채 두 달 동안 난민할당제 반대 캠페인이 벌어졌다.

올해 6월 2016유로 경기 때는 전후반 사이 휴식 시간에 난민할당제 반대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는 등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오르반 총리의 최측근인 야노스 라지르 비서실장은 최근 작은 마을을 직접 돌며 투표에 참여하라고 주민들을 독려했다.

320만명 이상 오르반 총리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투표소를 찾지 않은 대부분의 유권자는 EU와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를 거부하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보이콧 운동도 막판 효과를 발휘했다.

헝가리 정치 전문가인 라즐로 로비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320만명의 유권자가 반대 의사를 밝혀 상황이 애매하게 됐지만 오르반이 패했다고 봐야 한다"며 "EU로서는 국민투표가 무효가 됐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헝가리 국민투표가 무산되면서 난민할당제 때문에 회원국 간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한 EU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올해 EU가 할당해 재정착한 난민은 지난달 초까지 4천519명이었다.

헝가리는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헝가리가 수용해야 하는 난민은 16만명 중 1천294명이다.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