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뱅크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면서 이를 초래한 미국 정부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도이치뱅크의 지급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 폭탄’을 안긴 미 법무부의 결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가 도이치뱅크에 대한 공격으로 유럽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이치뱅크 주가는 9월15일 미 법무부가 2005~2007년 상품의 부실 판매를 이유로 140억달러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이후 2주도 채 안 돼 20% 폭락했다.
[확산되는 도이치뱅크 리스크] 도이치뱅크 사태 키운 미국의 벌금폭탄
수익 악화로 시장에서 지급능력을 의심받고, 자본 확충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유럽연합(EU) 최대 은행을 상대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방아쇠를 당겼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자본구조로 고전하고 있는 도이치뱅크도 지급능력을 넘어선 벌금을 부과받자 140억달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이라며 맞서고 있다.

지난 7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연례보고서에서 도이치뱅크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최대 위험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GSIB)’인 도이치뱅크가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에서 위험에 빠질 경우 연쇄적으로 유럽은 물론 미국의 주요 은행까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의 은행들도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주가도 급락하면서 미래 생존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은행에 대한 EU의 구제금융이 어려워진 정치적 불확실성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동안 유럽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새로운 EU의 규칙도 구제금융의 실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올초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의 대형 은행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차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이치뱅크가 자칫 유로존 금융붕괴의 진앙지가 될 수 있는, 살얼음을 걷는 상황에서 미국이 국제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결정을 내린 배경을 놓고 일각에선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WSJ는 “도이치뱅크에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을 매긴 것은 EU가 애플에 부과한 130억유로(약 145억달러) 규모의 세금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