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통상장관 긴급회의서 합의…"내년 1월까지 최종 합의 비현실적"
세계 최대 FTA 협상 3년여만에 좌초…재개까지 상당 시간 걸릴듯
CETA는 내달 27·28일 加 총리 EU 방문 때 공식 서명, 내년 발효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지난 2013년부터 협상을 추진해온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 내년 1월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임기 내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됐다.

EU는 23일(현지시간) EU 순회의장국인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긴급 통상장관 회의를 하고 극심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TTIP 문제에 대해 논의,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은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당초 EU와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협상을 타결짓는다는 목표 아래 지금까지 13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해왔으며 내달 3일부터 14차 협상을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14차 협상에서도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대세를 이뤄왔다.

슬로바키아의 피터 지가 경제장관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TTIP에 대한)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면서 "협정의 질이 속도감 있는 협정 체결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해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 TTIP 협상타결 실패를 공식화했다.

다만 EU 통상장관들은 이날 회의에서 TTIP의 필요성에 대해선 인식을 같이하고 미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협상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EU는 내달 20~21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TTIP 문제를 추가로 논의한 뒤 오는 11월 11일 통상장관회의에서 정상회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후속조치를 밟을 방침이다.

하지만 내년 1월 미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뒤 협상이 재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양측간 견해차가 클 경우 TTIP 협상을 계속 추진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동안 미국과 TTIP 협상을 이끌어온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회견에서 미국의 새 정부가 진영을 구축하고 협상을 효과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선 적어도 5~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미국의 새 정부가 어떻게 짜일지 알기 전에는 언제 협상이 재개될지 예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EU와 미국의 8억5천만 명의 소비자를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묶는 구상이었던 TTIP는 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협정이 될 것으로 예상돼 큰 주목을 받았지만 3년여 만에 좌초위기에 놓이게 됐다.

EU 집행위는 그동안 TTIP가 체결되면 EU와 미국 간 무역장벽을 제거해 경제성장과 고용을 촉진할 것이라며 그 효과가 EU의 경우 매년 1천190억 유로(1천330억 달러·147조3천억 원), 미국의 경우 950억 유로(1천60억 달러·117조6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TTIP 협상이 시작된 이후 EU의 핵심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일부 EU 회원국들은 TTIP가 환경과 복지 등에 대한 유럽의 기준을 훼손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또 막바지 협상을 앞두고 지난 주말과 이번 주 독일과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노조와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TTIP 반대 시위가 열려 찬반 논란에 기름을 부으며 협상 전망을 어둡게 했다.

한편, EU 통상장관들은 지난 2014년 협상을 마치고 비준을 앞둔 캐나다와의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에 대해선 내달 27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EU 방문에 맞춰 공식 서명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내달 18일께 통상장관들이 특별회동을 해 비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될 경우 CETA는 내년에 정식 발효된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이날 오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CETA에 대해선 10월에 비준하자는 엄청난 의지가 있었다"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남아 있지만 아주 유익한 토론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등이 CETA의 공공서비스, 노동, 환경 분야 합의 내용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원만히 이견이 조율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