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도 '마약과 전쟁' 박차 주문…유엔 초법적 처형 조사 허용 안할듯

필리핀에서 마약상과 결탁하는 등 불법 마약 매매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공직자에 대한 숙청 바람이 또 한차례 몰아친다.

18일 일간 마닐라타임스 등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약 매매와 관련된 공직자 1천여 명의 명단을 군 참모총장에게 전달했다.

이 명단에는 주지사와 시장을 비롯한 지방 관료, 의원, 경찰관 등이 포함됐다.

군은 경찰과 함께 이들에 대한 조사와 체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이달 초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폭탄 테러 직후 두테르테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언에 따라 경찰과 같이 치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8월 초 마약 매매 연루 의혹이 있는 공직자와 정치인 등 160여 명의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이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이 경찰서에 자수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17일 한 군부대를 방문, 연설을 통해 "내가 대통령 임기 6년간 살아있을지 모르겠다"며 "불법 마약에 연루된 사람이 너무 많아 모두 죽일 수 없고 그들이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무를 수행하는 단 한 명의 경찰관이나 군인도 감옥에 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마약 조직의 암살 음모를 의식하며 군에도 마약과의 전쟁에 박차를 가하도록 주문해 마약 단속 현장에서 사살되는 용의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6월 말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 이후 3천 명 이상의 마약 용의자가 경찰이나 자경단 등에 의해 사살됐다.

이에 따라 국내외 인권단체뿐 아니라 서방국가의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 15일 필리핀 정부에 초법적 처형의 중단을 요구하고 주필리핀 EU 대표부와 28개 EU 회원국 대사관에 필리핀 정부의 인권 침해를 감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최근 필리핀 상원 청문회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과거 다바오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 자경단을 운영하며 범죄 용의자와 정적 등 약 1천 명을 죽였다는 전 자경단원의 증언이 나왔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이 증언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겠다고 밝혔으며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필리핀 정부에 유엔 현장 조사의 허용을 촉구했다.

그러나 찰스 호세 필리핀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 조사는 해당 국가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필리핀 대통령궁은 상원 청문회 직후 두테르테 대통령이 초법적 처형을 지시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kms123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