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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과는 거리두면서 중국, 러시아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합동 순찰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무기 등 방위 장비를 구매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필리핀 파사이시의 빌라모어 공군기지를 방문해 “미국이나 다른 국가와의 남중국해 합동 순찰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군사 장비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명시적인 이유는 남중국해 문제에 예민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마약·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필리핀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싸울 계획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F-16 전투기는 필요없다”며 “대신 마약이나 테러와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를 사들일 것”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6월 집권 후 줄곧 친미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2000명 이상 희생한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에 미국이 인권문제를 이유로 쓴소리를 계속하면서 양국 관계가 틀어졌다. 지난 6일에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욕설을 했다. 이에 백악관은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양국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필리핀의 태도 변화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동맹국과 함께 추진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WSJ는 필리핀과의 군사동맹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균형을 이루려는 미국의 전략에 중요한 지지기반이라고 전했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을 끊으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대외 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