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이 핵심 동맹국과의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각을 세워온 친미 국가 필리핀은 돌연 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의 경제 악화와 치안 불안으로 투자처와 에너지 확보 전선에 차질이 생겼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주둔한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민다나오에 있는 미군이 이슬람 반군단체의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2년부터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된 군사지원단을 민다나오에 파견해 반정부 단체 소탕에 투입되는 필리핀 군대의 교육과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미군의 안전을 고려한 의견처럼 들리지만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인권 문제를 제기한 미국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6일에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약 용의자 사살을 거론한다면 특정 동물(개)을 빗대 욕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8일 미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도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 언동에 미국은 골치가 아파졌다. 필리핀은 1950년대 미국과 방위협정을 맺었고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과 대립하며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필리핀 내부에서는 미국과 관계가 멀어지면 유사시 기댈 곳이 없어져 위험하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의 반미 움직임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의 관계에선 고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십년간 베네수엘라와 전략적 동맹관계 구축에 공을 들여온 중국이 기로에 섰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6% 감소하고, 올해도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등 투자매력이 크게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매장국인 베네수엘라에 지금까지 600억달러(약 67조원)를 빌려줬다. 차관을 주고 자국 기업 투자를 지원하면서 하루 6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하지만 2014년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국제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급락하면서 차관 상환에 비상이 걸렸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돈도 200억달러에 달해 추가 대출과 투자가 중단됐다.

베네수엘라 치안이 불안해 현지 중국인과 기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걸림돌이다. 베네수엘라의 살인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아 중국인들은 오후 7시가 넘으면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다. WSJ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을 존경했고 같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