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영국에 유럽연합(EU)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일본 기업들이 영국 내 본사를 유럽으로 옮길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나서 일본 기업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줄 것을 주문하는 등 일본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 정부에 경고장 날린 일본…"브렉시트로 일본 기업에 피해 주면 철수할 것"
◆A4 12장의 강력한 메시지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총리관저와 외무성 홈페이지에 ‘영국 및 EU에 보내는 메시지’를 게재했다. A4용지 12장 분량의 메시지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은 영국에 활발히 투자해 왔다”며 “이런 사실을 신중히 고려해 일본 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로 대응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과 EU 간 무관세를 유지하고 EU 규제와 기준을 영국에 계속 적용할 것 등을 제안했다. 현행 제도에 변화가 있을 경우 사전에 충분한 시간 여유를 줄 것도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또 “브렉시트 후 EU법이 영국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면 영국에 유럽 본부가 있는 일본 기업들은 본사를 유럽 대륙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스카이뉴스 등 영국 언론은 이 메시지에 대해 ‘전례 없는 일본의 경고’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에서 “앞으로의 과제가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가 분명해졌다”며 영국 정부에 대응을 촉구했다.

앞서 쓰루오카 고지 주영 일본대사도 영국 인디펜던트에 브렉시트 후 조건이 맞지 않을 경우 영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이 투자를 중단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 언론이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영국 의회 질의에서도 이 내용이 거론됐다. 브렉시트 협상을 관장하는 데이비드 데이비스 유럽연합탈퇴장관은 “일본 정부로서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라며 “우리는 몇몇 기업이나 은행의 이익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이익을 보고 있어 (탈퇴안 작성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EU와 개별 협정도 추진

일본 정부는 지난 6월24일 브렉시트가 결정된 뒤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장관 아래 재무성, 외무성, 경제산업성, 농림수산성, 금융청 등 관련 부처가 참석하는 브렉시트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지난 2일까지 열린 세 번의 회의에서 유럽 진출 일본기업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이번에 이례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내놨다.

아베 총리도 지난 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영국과의 관계는 일본에 매우 중요하다”며 “영국 내 일본계 기업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브렉시트 이후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일본 기업의 불안을 직접 전달한 것이다.

이번에 이 같은 메시지가 나온 것은 일본 기업의 EU 시장 공략을 위해선 영국의 탈퇴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약 1000개 일본 기업이 진출해 현지인 14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3대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히타치제작소, 후지쓰 등은 영국을 EU 시장 공략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EU 간 무역에서 관세가 부활할 경우 일본 기업은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 결정 직후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7.92%나 급락했고, 엔화가치는 2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99엔대로 치솟는 등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본 정부는 영국과 수출관세 감면, 공평한 투자 조건 정비 등을 골자로 하는 개별적인 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유럽에서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상대국이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