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디딤돌' 홋카이도 세 곳에 놔…일본 전역 강제노동 터에 설치 확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1910년 8월29일) 106년을 앞두고 한국 민간단체가 일본 전역에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기억과 추모를 위한 상징물 설치를 시작했다.

㈔평화디딤돌은 일본 민간단체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와 함께 이달 21∼22일 홋카이도(北海道)의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 등 세 곳에 추모상징물인 '평화디딤돌'을 설치했다고 28일 밝혔다.

평화디딤돌은 가로 45㎝·세로 35㎝의 동판 재질로, 희생자의 이름, 나이, 출신지, 사망연월일 등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혀 있다.

한일 두 단체는 21일 슈마리나이(朱鞠內)댐 등에 강제동원됐던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댐 인근 사찰 코켄지(光(日+業+頁)寺)에 평화디딤돌을 설치하고 추모 의식을 거행하며 일정을 시작했다.

특히 이곳의 평화디딤돌에는 조선인 희생자뿐 아니라 죄 없이 끌려가 고된 노동을 하다 숨진 일본인의 희생 사실도 기록했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강제동원 희생 자체를 기억하자는 취지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과 함께하는 평화디딤돌 설치 사업은 현대 일본인의 일상 공간에서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고,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평화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단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어 22일에는 홋카이도 중부 비바이(美唄)시 토메이(東明)의 사찰 조코지(常光寺)와 삿포로(札晃)의 사찰 혼간지(本願寺) 별원에 평화디딤돌을 설치했다.

이들 장소는 작년 추석 두 단체가 한국 땅으로 봉환한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115위(位) 중 일부가 발굴 이후 임시로 모셔졌던 곳이다.

평화디딤돌 설치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때마침 일본 열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산사태가 발생, 길이 끊기는 바람에 홋카이도 북부 사루후쓰(猿拂) 아사지노(淺茅野)에 있는 일본육군비행장 터에는 설치가 좌절됐다.

이들은 22일 오후 삿포로 혼간지 별원에서 '동아시아의 기억과 공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란스치(藍適齊) 대만국립정치대 교수는 "평화디딤돌 설치는 희생자들의 삶을 되돌리는 일"이라며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연대하는 힘을 준다"고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과거사를 국민 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며 "평화디딤돌이라는 상징적인 기억의 공간에 깊이 공감해 국제화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경 작가는 평화디딤돌을 제작하고 이번 여정에도 함께 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철거를 요구하는 소녀상에 대해 "일본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격적이거나 민족 감정을 일으키는 상징물이 아니라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기 위한 상징물"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평화디딤돌은 한국의 희생자 고향 땅과 일본 방방곡곡 강제노동 현장에 평화디딤돌을 놓는 활동을 이어가며, 위치와 그 내용을 인터넷 공간에 기록할 예정이다.

정병호 ㈔평화디딤돌 대표(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 활동은 우리만이 아닌 양심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함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