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돈 풀기(양적완화)’ 정책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일까. 시중은행이 보유한 국채 물량은 급감했고, 국채 유통시장의 유동성도 줄었다. 일본은행이 시장에서 국채를 더 사들여 돈을 풀고 싶어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은행의 정책 여력이 많지 않다는 인식이 외환시장에 퍼지면서 엔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해석도 나온다.
은행보유 국채 바닥…'구로다 카드' 한계왔나
○은행, 팔 국채가 없다

1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우정그룹 자회사 유초은행과 미쓰비시도쿄UFJ, 미즈호, 미쓰이스미토모 등 4대 은행의 일본 국채 보유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4조엔(약 1260조원)으로 2013년 3월 말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시중 국채를 대거 매입하면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 때문이었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부터 연간 60조~70조엔 규모 국채를 은행, 보험 등 금융회사에서 사들여오다가 2014년 10월 말 이 규모를 연간 80조엔으로 늘렸다. 그 결과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액은 6월 말 386조6000억엔으로 2013년 3월 말(125조엔)보다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최근 국채 매입 여건이 빠듯해졌다. 종전과 달리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국채를 팔아 이익을 챙기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은행은 중앙은행이나 은행 간 거래에서 자금을 빌리려면 일정 규모의 국채를 담보로 들고 있어야 한다.

미쓰비시도쿄UFJ의 국채 보유액은 6월 말 26조8000억엔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적완화 시행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담보 요건을 충족할 최소 국채 보유한도(15조엔)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미즈호은행은 10조5000억엔인 국채 보유액을 더 이상 줄이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채를 팔 투자자를 찾는 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급선무가 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유동성 위축도 문제

채권시장에서 국채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일본은행엔 부담이다. 일본증권업협회는 금융권의 국채 거래대금이 5월 10조1000억엔으로 2004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유동성이 떨어지면 적은 물량에도 국채 금리가 요동칠 수 있다. BNP파리바는 일본은행의 전체 발행잔액 대비 국채 보유 비중이 올 연말 43%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행이 채권시장에서 ‘연못 속 고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다한 국채 보유는 일본은행의 재무구조도 악화시킬 수 있다. 2월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으로 일본은행은 액면가보다 비싼 가격에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일본은행이 재무성에서 받는 국채 이자 수입은 2015회계연도 1조2875억엔까지 불어났지만 이제는 이 수입에서 마이너스 금리만큼 수수료를 내야 할 판이다.

○외환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99.57엔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데다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기대감도 줄어든 영향이 컸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발행된 국채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아직 시장에 있어 양적완화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추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 카드로는 마이너스 금리 추가 인하와 국채 매입 한도 확대 등이 꼽힌다. 시장은 회의적이다. 노구치 마이코 다이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한도를 조금 더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양적완화는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