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은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살아있는 부처’로 불린다. 숭배가 거의 종교적인 수준에 이르다 보니 그가 타계하면 사회 동요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젊은 시절 푸미폰 국왕은 1년의 3분의 1을 전국 각지를 돌며 지역 주민의 생활 개선을 챙겼다. 중요한 정치적 대립을 중재했다. 하지만 존경을 넘어 국왕을 미화하고 신적인 존재로까지 높인 것은 군부의 의도였다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설명했다. 국왕을 사회 구심점 삼아 통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은 국왕의 승인을 받으면 쉽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왕실은 군과 고위 관료, 엘리트층, 방콕의 중산층·부유층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기득권이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이 왕실과 지배 계급의 통치를 연장하기 위한 눈속임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절대왕정 시대의 신하들은 입헌군주제 이후 고위 관료로 변신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왕실 재산은 2015년 기준 440억달러(약 48조원)로 추정된다. 시암은행, 시암시멘트, 켐핀스키호텔그룹 등 재벌급 기업과 주요 쇼핑몰, 광대한 토지가 왕실 소유다. 소득세는 면제된다. 국왕이 국민을 위해 자선사업과 시혜를 베푼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상은 재산의 아주 작은 부분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자 일부는 공화주의자다. 입헌군주제를 폐지하자고 했다. 탁신 정권은 왕실과 전통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에 큰 위협이었다. 탁신 정권은 쫓겨났지만 태국 사회의 모순과 불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